
[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인공지능이나 로봇, 디지털기술의 발전은 인권의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새로운 기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은 대체로 신기술의 등장이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하는 발전을 가져온다는 시각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감시기능 등 또다른 두려운 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안고 있다. 지난 9월 말 신기술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 영향을 주제로 개최된 '제14회 아시아 인권포럼'은 이러한 질문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논의가 이어졌다.
이원형 한동대 교수가 발표한 신기술의 장애개선 적용현황에 따르면 네이처커뮤니케이션스 2022년 3월호에 발표된 루게릭환자의 뇌신호를 읽어낼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발 관련 뉴럴링크 연구는 알파벳으로 문장을 만들 때 뇌파의 신호를 탐지해 눈동자마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 안에 완전히 갇혀버린 환자가 아들에게 "함께 영화 보지 않을래?" "내 멋진 아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읽어내는데 성공한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의 경우 친구나 간병인, 치료사와 소통할 때 볼 수 없었던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을 소셜로봇과 상호작용을 할 때 보여준다. 이들은 오히려 로봇과 소통하면서 눈을 맞추는 등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우울감, 불안, 사회적 위축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로봇과 함께할 때 더 사교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용 로봇을 통해 사회성 훈련을 함으로써 자폐아동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술의 발전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보통 기술은 중립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면 우리는 특정 방향을 지향하는 기술개발을 장려하거나 제한할 필요 없이 이미 개발된 기술을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사용하는데 신경 쓰면 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자주 깨진다. 예컨대 SNS와 같은 새로운 통신수단의 등장이 언론의 독점을 해체하고 분권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불행하게도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의 발표는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에 긍정적인 기여보다 오히려 삶의 격차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심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중요하게 지적했다. 기술은 의외로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이 단순히 수동적 수혜자로 대상화되지 않으려면 기술의 개발 및 방향설정에 좀 더 개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신기술 개발에 따른 인권의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특정 기술영역에서 인권증진을 위해 준수해야 하는 윤리적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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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신기술로의 접근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신기술의 발전은 보편적 디지털 시민권이라는 새로운 인권의 항목을 추가한다.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가 18세기와 19세기, 20세기에 걸쳐 차례로 정립됐고 이러한 권리는 지구적으로 일정한 편차를 두고 확산했다. 근대의 시민권과 다르게 디지털 시민권은 그 기술적 성격상 지역, 계층, 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 없이 모두에게 전면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5월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와 차별방지를 위해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에 관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주요 내용은 인간의 존엄성, 투명성, 자기결정권의 보장, 인권영향 평가, 위험도에 따른 규제 등을 포괄한다. 새로운 정책이나 디지털 서비스를 도입할 때 처음부터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성이 보장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담아 정부와 국회가 공청회를 통해 '디지털포용법' 제정을 서두르는 점도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