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제거래의 기술

[광화문]국제거래의 기술

강기택 기자
2025.02.19 04:11

손자병법은 기만술을 기반으로 한다. 의도를 감추고 상대를 속여 승리를 쟁취하는 법을 다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책을 탐독하고 그에 따른 전략과 전술을 실행해왔다. '미치광이' 전략도 그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방식은 상대방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긴 뒤 시간을 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꺼내놓게 하는 것이다. 백악관이 지난 13일 서명한 상호무역과 관세각서 발표문에 '국제거래의 기술'(the art of international deal)이라는 표현을 쓴 데서 알 수 있듯 국가간 협상을 게임처럼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술'은 지기(知己)로부터 비롯된다. 압도적 군사력뿐만 아니라 기축통화와 금융시스템, 석유와 식량의 자급자족, 통신과 반도체 공급망 등 미국의 힘을 명확히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 힘을 제대로 쓰면서 미국 이익의 극대화를 시도한다.

이 같은 지향점을 담은 슬로건이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다. 백악관이 "중국 같은 경쟁자든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한다"고 한 데서 드러나듯 미국의 이익과 배치되면 미국이 가진 힘으로 다른 국가를 압박한다.

관세맨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이 같은 미국의 의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전선은 넓다. 특정 국가나 산업, 품목 등에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세와 디지털세 같은 세금과 보조금, 외환, 환경정책 등 비관세장벽까지 전쟁의 대상에 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행보를 보면 한국에 대한 요구사항은 짐작이 가능하다.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를 무시하고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부과를 통보한 것은 2007년 체결한 한미 FTA(대미 수출입 품목의 98% 상호 무관세)를 건들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대미 무역흑자를 많이 내는 품목에 대한 관세도 각오해야 한다. 이미 4월2일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무역흑자 660억달러 중 가장 많은 흑자를 낸 게 자동차인 만큼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비관세장벽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자동차 배출 관련 인증절차 등을 걸고넘어질 게 뻔하다. 외환정책도 환율조작국 지정 운운하며 블러핑을 할 수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이나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추가 투자요구 등도 예상범위에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힌트는 호주, 일본, 인도 등의 움직임에서 얻을 수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호주가 미국에 무역적자를 내고 있으며 호주산 제품은 미국 강철 수입량의 1%, 알루미늄 수입량의 2%에 지나지 않음을 어필해 관세를 피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미투자와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수입확대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관세부과나 방위비, 주일미군 주둔경비 증액 등을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숙제로 남았을 뿐이다.

인도의 경우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인도와 미국간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협정체결을 목표로 머리를 맞대기로 했고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에너지도 수입하기로 했다. 인도는 일부 품목의 관세를 낮추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으로 정상간 대화나 합의를 이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더 불리하다. 힘에 근거한 '국제거래의 기술'을 방어할 힘도 약한데 리더십 공백까지 겹쳤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정부와 민관이 물밑에서 원팀으로 대미 아웃리치 활동을 펼쳐왔다. 치밀한 대응논리로 미국이 원하는 것은 내어주되 조선·방산 등에서 챙길 것은 챙기면서 양국간 이익의 접점을 찾는 '기술'이 필요하다.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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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택 기자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최고 경지, 머니투데이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독창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기사로 독자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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