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현대제철에서 벌어지는 일은 한 기업이 겪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업종을 막론하고 모든 기업이 경험할 수 있는 사례가 집약돼 있다.
현대제철은 노조의 파업에 맞서 충남 당진 냉연공장의 직장폐쇄도 단행했다. 인천 공장의 철근공장은 한 달 동안 멈춰 감산 중이다. 경북 포항 2공장은 문을 닫으려다 생산을 축소했다. 비상경영에 돌입했고 임원급여를 20% 삭감했다. 희망퇴직과 전환배치 신청도 받는다. 국내 건설업황이 나빠진 가운데 중국의 저가물량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실적이 악화한 탓이다. 매출에서 국내 비중이 85.1%니 건설업 불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 철강업체들이 자국의 경기위축에 따른 돌파구를 한국에서 찾았다. 현대제철의 연결기준 매출은 2022년 27조3406억원에서 2023년 25조9148억원, 2024년 23조2261억원으로 감소일로였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조6165억원, 7983억원, 3144억원으로 급감했다. 노조가 현대차만큼 성과급을 달라고 하지만 줄 수 없는 처지다.
중국발 공급과잉은 철강업체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석유화학산업도 타격을 받았다.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증설을 했다가 자국 내 수요가 사그라들자 헐값에 밀어내기를 했다. 우리 정부가 사업매각과 인수·합병을 원활히 하는 방식으로 사업재편을 유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업종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현대제철만이나 철강업계만이 아니라 상호관세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의 공통된 현안이다. 각자도생을 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런 차원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방식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을 발표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 철강제품을 공급해 생존과 성장을 꾀하려는 것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뤄진 의사결정이 아니다. 트럼프 1기 시절인 2018년부터 고민한 결과물이다. 당시에도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매기려 했고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물량을 직전 3년의 70%(263만톤)로 제한하는 쿼터제로 귀결됐다. 이는 매출 다변화로 시장을 확대하려던 철강업체들에 '족쇄'로 작용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던 현대차그룹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가격문제도 존재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철강, 화학 등 전기요금 민감업종에 속한 112개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평균 전기요금 납부액은 2022년 대비 36.4% 증가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2023년 기준)은 1MWh(메가와트시)당 122.1달러였다. 반면 미국은 80.5달러다. 당장 고효율 설비로 교체하거나 가격전가를 하는 게 쉽지 않으니 비용절감을 위해 가동률을 낮추거나 설비를 해외로 옮기는 사례가 각 업종에서 나타난다. 철강업의 경우 전기로를 쓰는 곳은 전기료가 싼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만 공장을 돌리는 방식으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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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노조는 역대 최대 투쟁기금을 걷어 총파업과 부분·일시파업을 거듭했다. 사측과 마주앉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8일부터 자회사를 포함해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압박한다.
일자리가 빠져나가고 제조업이 공동화한다고 우려하지만 새 먹거리를 찾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기업의 생존공식은 바뀌었다. '수출'을 통해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 과거와 달리 '해외생산과 해외매출'을 통해 지속적인 존립의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지난 2월 발표한 담화문에서 "지금은 갈등을 심화시킬 때가 아니다"라며 "하나가 돼 어려움을 헤쳐가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이라고 했다. 노사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도 탄핵정국의 혼란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공멸을 원하지 않는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