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배아픔의 심리학과 톨레랑스의 정치학

[투데이 窓]배아픔의 심리학과 톨레랑스의 정치학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5.06.04 02:05
최연구(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최연구(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심리적 DNA며 우리 무의식에 자리잡은 고질적 정서다. 경쟁자에 대한 배아픔 현상은 사회적 통증을 넘어 사회발전의 족쇄가 됐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욕구부터 자아실현까지 5단계로 설명했다. 한국은 고속성장으로 생존과 안전이라는 기본욕구와 배고픔을 극복했고 더 높은 단계인 존경과 자아실현 욕구를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나와 다른 생각이나 타인의 성공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질투나 억울함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과 맞먹는 통증을 느낀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나 배아픔 같은 심리현상은 물리적 통증과 일부 뇌 영역을 공유하고 비슷한 신경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성적경쟁, 직장에서는 승진경쟁이 배아픔을 낳고 공동체의 연대감을 파괴한다. 배아픔은 개인적 고통에 그치지 않고 사회관계와 집단 내 신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정치영역의 배아픔은 극단적이다. 여야는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권력을 쥔 쪽은 권력을 독식하고 상대를 배제한다. 일찍이 액튼 경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치의 권력독점과 남용은 이 경고가 현실이 된 모습이다. 권력이 클수록 부패위험이 커지기에 권력자일수록 권한행사에 더 신중해야 한다. 절대권력은 상대 세력의 배아픔도 극대화한다. 한편 권력을 빼앗기면 분노하고 선거불복, 정치공학적 공격, 극단적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배아픔이 정치화되면 사회는 양극화와 혐오정치에 갇힌다. 정책보다 진영의 색깔이 판단기준이 되고 국회, 정부, 사법부, 언론마저 편가르기에 동원된다. 결국 모두 패자가 된다. 이 때문에 권력분점이 필요하다. 권력분산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 배아픔의 정치는 약화된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토양에서 자라난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수용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면역력을 갖춘 사회다. 이때 필요한 것이 톨레랑스다. 톨레랑스는 관용이나 자비가 아니라 다양성이 공동체의 창의성과 생명력을 강화한다고 믿는 사회적 가치관이다. 서로 다른데 억지로 통합할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톨레랑스가 필요하다. 또한 권력이 클수록 비판적 견해를 경청하는 톨레랑스가 더 필요하다. 다양한 종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더 안정적이듯이 다양한 의견과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다. 영국 의회의 상호존중 원칙,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 프랑스의 좌우동거 내각처럼 톨레랑스가 제도와 문화로 자리잡을 때 정치적 갈등은 건설적 경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물론 혐오, 인종주의, 전체주의까지 톨레랑스 대상이 되진 않는다.

권력집중은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다양한 관점이 배제될 위험 또한 커진다. 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상대의 배아픔은 증폭된다. 반면 권력이 분산되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고 배아픔은 비판적 담론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배아픔에 반응하는 정치가 아니라 배아픔을 치유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말뿐인 협치나 보여주기식 대화로는 배아픔의 정치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정치문화의 변화, 국민인식 전환, 사회 전체의 감정적 성숙이 절대 필요하다. 다른 의견과 반대세력을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때 정치는 희망이 될 수 있다. 배고픔을 나눴듯이 권력도 나눠야 한다. 배고픔은 과학과 경제로 이겨내고 배아픔은 정치와 문화로 해결해야 한다. 권력분점은 톨레랑스의 제도화며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제 새 정부는 톨레랑스의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쪽이 톨레랑스에 앞장서 배아픔 정치의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절실한 치료제는 더 많은 성장보다 더 깊은 이해와 공존이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 성숙한 국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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