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울대 10개 만들기, 간판만 바꿔선 안 된다

[기고]서울대 10개 만들기, 간판만 바꿔선 안 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5.06.23 02:03
배상훈(성균관대 교육학과, 교무처장)
배상훈(성균관대 교육학과, 교무처장)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서울대가 정점에 있는 대학서열 구조와 수도권 집중이 초래한 문제는 교육을 넘어 사회 양극화를 불러오고 지역소멸까지 가속한다. 과도한 입시경쟁은 공교육을 왜곡하고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급 명문대를 지역에 고르게 육성하겠다는 정책의 취지에 공감한다. 지역균형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있다. 정책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획기적인 투자로 교육의 질을 높여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라면 과거 '잘 가르치는 대학 사업'이나 '글로컬대학30'의 경험을 발전시켜 더 많은 교육 명문대학을 만들면 된다. 분명 의미가 큰 정책이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연구력과 교육역량을 갖춘 교수진, 국제 공동연구 허브, 글로벌 인재가 모여드는 학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면 접근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단지 '서울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산을 투입한다고 명문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대급 대학을 만드는 시작은 우수한 교수진의 확보다. 교수는 대학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연구자들은 연봉만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인프라, 국제협력 네트워크, 자극을 주는 학문적 동료들이 있어야 한다. 연구장비는 당장 살 수 있어도 대학 평판과 연구 네트워크는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야 얻을 수 있다. 10년 이상 일관되고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둘째, 정주여건도 중요하다. 연구자가 지역에 정착하려면 가족의 삶의 질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녀의 교육, 배우자의 경력발전, 문화 기반이 충족돼야 인재를 붙잡을 수 있다. 대학을 키우려면 포스텍과 포항시의 사례처럼 지역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셋째, 리더십과 정책의 일관성이다. 총장과 정책이 4년마다 바뀌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혁신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8년 이상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총장의 리더십과 대학 경영체제가 필요하다. 리더십이 바뀌더라도 비전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장기 프로젝트 관리와 모니터링 체계를 운용해야 할 것이다.

넷째, 연구역량이 탁월한 교수라도 대학원생과 연구생태계가 없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주변에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중심 대학과 공동연구를 진행할 기관이 함께 있어야 연구생태계가 작동한다. 서울대급 대학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태계를 발판으로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대학 선정을 잘해야 한다. 단순히 거점국립대라는 이유로 포함하거나 지역안배 차원에서 떡 나누듯 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공립대든 사립대든 변화의 의지와 실행역량을 갖췄느냐가 선정 기준이어야 한다. 서류심사뿐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장방문을 통해 총장의 철학과 비전, 교수들의 변화의 의지, 개방적인 캠퍼스문화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다면평가가 필요하다. 모든 분야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면 일부 영역부터 시작하는 특성화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 아울러 수도권 대학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혁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럴 때 건전한 경쟁이 생기고 동반성장하는 고등교육 생태계가 구축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간판 바꾸기가 아니다. 국가 고등교육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미국 동부의 하버드대, MIT, 컬럼비아대, 서부의 스탠퍼드대와 UCLA처럼 우리나라에도 여러 색깔과 강점을 지닌 서울대급 대학 10개가 활약하는 한국형 고등교육 모델이 구축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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