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읽지 않은 책에 대한 변명

[청계광장]읽지 않은 책에 대한 변명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5.09.02 02:05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며칠 전 헌책방에서 좋아하는 철학자의 책을 구입했다. 영어본과 한글판으로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지만 불어 원본의 초판본이라니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불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이 책은 말 그대로 '갖고 싶어' 산 것이다. 사실 내 서재를 채운 책들은 읽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저 소장하고 싶은 '수집욕'의 결과인 경우가 적지 않다.

수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집은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기에 물건의 본래 쓰임을 무시한다. 사용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수집은 이미 그 의미상 필요 이상, 즉 '잉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집가들은 대체 뭣에 쓰려나 싶은 것들에 눈을 번쩍이곤 한다. 모두가 추앙하는 가치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쓸모없음'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한다.

돈이든 상품이든 유통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고 확장하는 시스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의 일반적인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무시하는 수집가는 별나 보인다. 가끔 희귀한 수집품이 비싼 값에 팔린다는 뉴스들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수집으로 이윤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 수집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책 수집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책에 욕심을 내는 사람 대부분이 읽으려는 의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유한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때문일지 모르지만 책을 쌓아놓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게으른 독서가일 확률이 높다. 나만 해도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수도 없이 많고 소장욕심 때문에 들여놓은 책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희망이 살아 있다. 가끔 내 책장을 보고 "이 책들 정말 다 읽으신 거예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정말 읽기라는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에이, 이걸 어떻게 다 읽어요"라며 웃어넘긴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저 책들은 읽지 않은 책이 아니라 그저 독서를 조금 미룬 책들이라고.

이탈리아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읽지 않은 책을 소중히 여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수만 권의 책을 가진 독서광이었는데 그가 아끼는 서재는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채워놓았다고 한다. 그에게 서재는 이미 읽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지식을 구성해줄 책들과 우연히 마주치기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내게도 책장은 이런 행복한 우연, 즉 행운의 보고(寶庫)다. 써야 할 글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책장을 둘러보다 눈에 들어오는 책을 펼치면 어느 틈에 천사가 손을 내민다. 신실한 연구자에게는 '천사의 손길'(angel's touch)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멋진 아이디어나 기대하지 않은 답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물론 이런 행운도 책 수집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책장을 채운다는 것이 당장은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을 약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에코와는 다른 방향으로 책 수집의 의의를 추적했다. 책 수집은 미래에 완료될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현재에서 벗어나 있는 과거에 대한 일종의 기억행위라는 것이다.

책은 그 내용과 별개로 언제나 사라짐의 위기 앞에 선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린다. 책장을 둘러보면 오늘의 나를 만든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한때 열정적으로 탐닉한 작가나 사상을 추억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들른 책방의 위치나 구조를 떠올린다. 때로는 퀴퀴한 고서들의 냄새로 가득찬 어느 여행지 골목의 진열장으로 소환되기도 한다.

책이 여전히 지식이나 정보의 매개체로서 중요하다면 수집의 결과로서 책장은 수집가 개인의 기억과 사유의 발자취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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