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금융은 산업정책의 성공열쇠

[투데이 窓]금융은 산업정책의 성공열쇠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2025.11.28 02:05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전 세계는 지금 친환경·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았다. 거기에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각국 정부는 핵심 성장전략으로 산업정책을 전면에 내세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간한 '산업정책의 귀환'이라는 보고서에서도 확인되듯 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정책은 빠르게 확산하고 그 규모와 범위도 2020년 이후 점차 확대된다. 각국은 첨단기술 개발과 제조업 부흥에 전략적 지원을 강화하며 자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반도체·배터리, 인공지능, 바이오·백신, 로봇, 방위산업 등 주요 경쟁분야는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세제혜택을 부여하며 보조금과 정책자금 대출 등을 통해 전략산업을 집중육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정책의 급속한 확산을 바라보며 우리는 중국 산업정책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많은 국가,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대규모 보조금, 세제혜택, 저리대출, 토지·에너지 무상지원 등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첨단산업을 육성했다. 그 결과 다수의 기술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진입했다. 겉으로만 보면 국가 주도 성장모델의 성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른 그림이 숨어 있다. 지난 8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중국의 산업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 전체로는 총요소생산성이 정체돼 있다. IMF는 산업정책이 기술적 성취를 이뤘음에도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린 것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국가 주도의 성장모델이 가진 구조적 한계, 즉 지방정부간 과열경쟁으로 인한 중복지원, 부실기업의 퇴출지연, 보조금에 의존한 좀비기업의 확산, 과잉투자와 소모적 가격경쟁, 그리고 민간자본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생산성 정체가 고착화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 지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국은 중국에 비해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동일한 정책실패라도 그 충격이 훨씬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거대국가이기에 감내할 수 있었던 중국의 비효율과 시행착오의 비용을 한국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규모가 작은 경제일수록 산업정책은 더욱 정교하고 효과가 입증된 방식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혁신은 본질적으로는 탄탄한 혁신 생태계에서 비롯된다. 국가 주도의 전략적 개입은 초기 시장형성, 대규모 인프라 구축, 기술 불확실성 완화 등에서 분명한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이 장기적 역동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부문이 중심이 된 생태계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민간 혁신 생태계를 떠받치는 핵심축은 시장감시와 자원배분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이다. 정부의 지원이 시장신호를 왜곡해 비효율적 기업을 연명시키거나 자본조달의 방향을 일률적으로 고정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기술진보를 이룰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중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대규모 산업정책이 첨단기술 개발을 견인했음에도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정체된 배경에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금융·자본시장의 구조적 경직성이 자리한다.

따라서 산업정책을 설계할 때는 어디에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만이 아니라 지원을 결정하는 초기단계부터 사업집행 이후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평가·선별·감시기능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장 기반의 규율이 약화하면 산업정책은 비효율을 키우고 자원배분을 왜곡할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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