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쿠팡이 일으킨 여러 문제는 하나같이 가볍지 않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입점 판매자에 대한 갑질논란, 퇴직금 미지급 문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물류노동자 사망 이슈까지. 여기에 지주회사를 미국에 두고 로비활동을 통해 한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쿠팡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진 것은 당연하다. 이 사안들에 대해 정부와 사법당국이 엄정히 책임을 묻는 것은 피할 수 없고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쿠팡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현행법으로는 제대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전방위 규제강화 논의로 이어진다. 특히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입법이 늦춰졌던 '온라인플랫폼' 규제에 정치권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쿠팡이라는 특정 기업의 위법·편법행위를 바로잡기 위한 대응이 자칫 플랫폼산업 전체를 옥죄는 포괄적 규제로 확산할까 우려된다.
소위 '온플법 단일안'으로 칭하는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만 보더라도 우려는 현실로 다가온다. 쿠팡 같은 대형 플랫폼을 겨냥한 것이라는 설명과 달리 모든 종류의 온라인 서비스를 포괄하고 연 매출액 100억원 또는 중개거래금액 1000억원을 초과하면 사전규제의 대상이 된다. 시장지배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조금만 성장하면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규제의 내용 또한 서면계약서를 교부하라든지, 노출순서 등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든지 플랫폼과 이용사업자 간에 자율로 정할 수 있는 영역까지 시시콜콜 관여하는 내용이다.
이런 촘촘한 규제는 규제준수 비용을 높이고 서비스를 대동소이하게 만들어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일수록 오히려 유리하다. 과징금 등 벌칙도 가혹하다. 사소한 절차적 의무위반도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는 카르텔 같은 악의적 불공정행위나 글로벌 플랫폼 규제에서나 적용되는 수준이다. 100억원 매출의 스타트업을 쿠팡, 구글처럼 규제하겠다는 꼴이다. 정작 이런 규제들을 해외기업들에 실효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처럼 광범위한 플랫폼 규제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국내 스타트업과 플랫폼기업이다. 쿠팡은 이미 자본, 조직, 법무 대응역량을 모두 갖춘 기업이다. 반면 이제 막 성장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에 과도한 계약·정산·공시의무와 과징금은 사실상 '성장금지 신호'에 가깝다. 쿠팡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제도가 쿠팡보다 훨씬 작은 기업들의 도전을 먼저 꺾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는 정책실패다.
스타트업의 존재이유는 '혁신'과 '성장'이다. 오늘의 대기업도 어제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설계하는 플랫폼 규제는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는 반대방향을 향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가장 크게 우려하는 리스크는 기술력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규제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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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처벌하되 플랫폼산업은 살려야 한다. 쿠팡의 문제는 기존 법체계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 공정거래법, 근로기준법 등 이미 제도가 마련돼 있다.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집행과 감독의 의지다. 그동안 정부의 조사정보 유출, 봐주기 수사 등 쿠팡에 휘둘려 제대로 법을 집행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다.
국민적 분노가 클수록 정책결정은 더 차분해야 한다. 사후약방문식으로 급하게 만든 규제는 반드시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플랫폼산업은 AI 시대에도 중요한 핵심 인프라로 규제보다 육성의 대상이다. 쿠팡을 때리려다 스타트업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혁신을 살리는 규제, 성장과 공정이 공존하는 제도설계야말로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줘야 할 책임 있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