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1년 로빈 후드의 전설로 유명한 영국의 노팅엄셔(Nottinghamshire) 지역에서 밤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망치를 들고 공장으로 몰려가 기계를 부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러다이트(Luddite)'라 불렀다. 기계가 숙련된 장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분노에서 비롯된 이 운동은, 결국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사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은 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이었지만, 역사는 러다이트를 '진보에 맞선 어리석은 저항'으로 기록했다.
2024년 봄, 샌프란시스코의 한 도로에서 시위대가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Waymo)'를 가로막았다. 그들의 손에는 "Robotaxis steal our jobs!"(로봇 택시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지난 4월에는 OpenAI의 CEO 샘 알트먼의 집에 20세 청년이 화염병을 던졌다. 용의자는 곧 체포되었는데, AI 기술에 반대하고 테크 기업 CEO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반(反) AI 선언문'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2명의 남성이 올트먼의 집 주변에서 총을 발사했다. 이 사건 역시 AI 기술 발전에 대한 극단적인 불만과 갈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들은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온라인상의 비판을 넘어 물리적 폭력과 테러 수준으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최근 기술의 급격한 발전, 특히 생성형 AI의 확산에 따라 기계에 의한 일자리 대체와 인간 소외에 저항하는 '네오 러다이트(Neo-Luddism)'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진원지는 낡은 공장이 아니라, 첨단 기술의 성지인 빅테크 기업들의 내부다. 물론 오늘의 러다이트는 서버를 망치로 부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해고 통보를 받은 후 링크드인에 긴 호소문을 올리거나, AI 반대 청원에 서명하거나, 의회 청문회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기술 진보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이다. 문제는 이번에는 기계에 쫓기는 쪽이 공장 노동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콘텐츠 전문가, 마케터, 심지어 변호사, 회계사와 의사까지 소위 '지식노동자'라 불리던 계층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해고 추적 사이트 '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 30일까지 오라클, 아마존, 노키아, 메타 등 155개 테크 기업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해고되었다. 이는 전년 대비 50% 증가한 수치다. 2020년 이후 누적 해고 규모는 90만 명에 달한다. 앞으로도 그 규모는 급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51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내 인력의 약 7%인 8700명을 퇴직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약 8000명을 감원하고, 6000명의 신규 채용을 취소했다. 구글도 2023년 전체 인력의 약 6%인 1만 2000명을 내보낸 데 이어, 올해도 안드로이드·픽셀·크롬 등 핵심 부문에서 수백 명을 정리했다. 아마존 또한 최대 3만 명의 본사 인력을 감축한다고 선언했고, IBM은 4분기 중 수천 명을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세일즈포스는 고객 지원 인력 4000명을, 액센추어는 1만 1000명을 줄였다.
충격적인 것은 이 모든 감원이 기업 실적의 추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알파벳, MS, 애플, 아마존, 메타 등 5대 빅테크는 올해 1분기에도 매출과 순이익이 증가했다. 3개월 동안 이들 5개사의 순이익 합계는 1151억 달러에 달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수만 명을 내보내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AI 시대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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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사(Big Pharma)들도 앞다퉈 AI를 도입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머크(Merck)는 4월 말 '에이전트 기반 AI 기업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구글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동시에 2027년 말까지 수천 명을 내보낼 예정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강자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도 최근 오픈AI와 전사적 AI 도입 계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조직 개편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사노피' 역시 'AI에 의해 운영되는 최초의 제약사'를 목표로 전사적 AX를 추진 중이며 R&D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등 빠르게 인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손을 잡은 '로슈'는 작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1만 개의 일자리를 줄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AI 혁신을 추진 중인 '노바티스' 역시 전체 인력의 10%에 달하는 8000명 규모 감축을 단행했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하다. AI가 반복 업무와 중간 관리자 역할을 직접 대체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조직을 슬림하게 재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직원을 줄이는 것'이 마치 AI 혁신의 훈장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AI와 노동 시장'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 옥스퍼드대 파비안 스테파니 박사는 'AI는 감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리한 설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기간 무분별하게 늘어난 인력을 AI를 명분으로 다시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디지털 경제 연구소(Stanford Institute for the Human-Centered AI, HAI) 소장을 맡고 있는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 역시 "기업들이 인력을 감축할 때 'AI 도입'을 이유로 들지만, 실제로는 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절감이나 팬데믹 기간의 과잉 채용 해소(Over-hiring correction)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꼬집었다.
AI가 일부 직무를 실질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고비용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사로도 활용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 결과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Forrester Research)의 '2026년 업무의 미래 예측(Predictions 2026: The Future Of Work)' 보고서에 따르면, AI 도입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의 55%가 이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감원이 효율 향상이 아니라 조직 혼란과 핵심 역량 손실로 이어진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 혁명과 대규모 실업의 결합은 언제나 사회적 격변을 낳았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영국의 방직공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19세기 철도 혁명은 마부와 역참 노동자들의 생계를 끊었다. 20세기 컴퓨터 혁명은 수많은 사무직들을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새로운 기술은 매번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생성형 AI가 지금은 고용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직종을 창출할까.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그 '기간'이 얼마나 길고 '전환기'에 치르는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때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AI 전환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재교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AI가 창출하는 생산성 이익의 일부를 사회 전체가 나눌 수 있는 과세 체계와 분배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아울러 AI 시대의 노동법 개편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기업은 '효율'과 '지속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단기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내보내는 것은 쉬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구조조정 기업의 절반이 그 결정을 후회한다는 데이터가 보여주듯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AI는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접근해야 한다. 인력 감축보다 기존 인력의 역할 전환과 AI 교육에 투자하는 기업이 장기 생존 가능성이 높다. '직원 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사람과 AI가 협업하는 새로운 조직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개인들은 '나는 AI가 하지 못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에 내주되, AI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AI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로서의 역량"이나, '기술에 인간적 가치를 입히는 기획력' 등을 연마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혁신은 망치를 든 근로자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망치 대신 AI라는 정교한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다. 기술로 인해 인간이 소외될 때 그 혁신은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