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반도체 등 소수만 수혜입어
중기·자영업·서민은 장기불황에 빠져
지역생태계 조성,직업훈련 지원 등 필요
디지털 전환은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플랫폼 경제, 데이터 산업은 세계 경제의 주류가 됐고 한국도 이 흐름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대전환이 가져온 경제적 이익이 고르게 분배되고 있지는 않다. 각종 지표와 현장 상황을 종합해보면 디지털 전환은 오히려 양극화 심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K자형 양극화'라고 하는데, 알파벳 K자처럼 아래위 극과 극으로 갈라지듯이 회복과 성장의 혜택이 계층·산업·지역에 따라 극단으로 갈리는 현상을 뜻한다. 디지털 전환 수혜를 입은 부문은 급성장하는 반면, 다른 부문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 양극화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AI·반도체 산업은 초호황이지만,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자영업은 장기불황이고 가계 실질소득도 답보상태다. 코스피 지수는 8000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호황은 반도체·방산·전장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되고 상승 종목보다 하락 종목이 훨씬 많다. 고유가와 물가 상승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정부 추경 예산으로 몇십만 원 지원금을 받았지만,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SK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노동자는 인당 몇억 원씩 나눠 갖는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같은 삼성전자라도 실적별로 성과급이 최대 100배 차이가 나고,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은 이런 혜택과 거리가 멀다. 수십조 원 규모 성과급은 대부분 다른 기업 노동자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같은 시기, 같은 경제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의 단면이다.
성과 보상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지나친 격차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반도체의 성과가 주주의 투자, 정부의 지원과 세금 감면 혜택, 하청기업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독식하려는 노조의 이기적 요구는 국민적 비난과 주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주주단체는 기업의 초과 이익은 연구개발 투자나 배당에 우선 환원돼야 한다며 행동에 나섰다. 엄청난 비난 여론이 일자 정부가 나서 노사 간 양보를 종용하는 등 갈등은 극에 달했고 노사협상 타결에도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반도체 노동자의 성과급이 대통령 연봉보다 몇 배 많은, 이런 극단적 현상은 한 기업의 성과 보상체계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누적된 양극화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업종의 초과 이익이 소수에게 쏠리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과도한 성과급이 글로벌 경쟁력을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 간, 지역 간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통 제조업과 내수산업은 회복세가 더디고 지역 불균형과 소비 격차는 심화일로에 있으며, 수도권에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사이 지방 경제는 위축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K자형 양극화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정책은 기술 경쟁력 강화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과 산업 영역을 보호하고 그들의 역량 제고를 지원하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중소기업 적극 지원,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 직업훈련과 평생교육 확대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대기업 초과 이익이 투자와 고용으로 선순환되고 사회에 환원될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기술의 사회적 영향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제도, 정책, 가치관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수혜집단은 크게 달라진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 디지털 전환의 성과가 특정 집단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합리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K-팝, K-컬처, K-헤리티지는 좋지만 K-양극화는 사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