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협 지도부 상식 이하 행태 목불인견
운동에 인생 건 선수들이 최대 피해자
승리지상주의 덜고 선수행복 존중해야
"Sound Body, Sound Mind!"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를).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의 풍자시에 나오는 이 명언과 함께, 1980년대 중반 모 우유회사 광고송 가사로 익숙한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라는 구호는 필자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생활 철학이다. 20대 초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한 이후 약한 허리로 내가 원하는 정상적인 일상과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간 꾸준히 아침 운동을 하며 체중 관리를 하고 있다. 머리는 어느새 절반 이상 흰색으로 변했고 얼굴 주름은 깊어져 가지만, 주말 새벽이면 어김없이 테니스 라켓을 들고 코트로 향한다.
운동에 진심인 한 사람으로서, 스포츠가 주는 삶의 활력과 정서적 평온은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이다. 올 여름 기록적인 무더위가 국민을 힘들게 하는 와중에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여러 불미스러운 사태가 국민들의 마음을 더 덥게 만들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독단과 비민주성, 불투명한 예산 집행, 그리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연일 보도되는 소식들은 국민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 사태를 바라보며 필자가 가장 마음 쓰이고 아프게 느껴지는 대상은 바로 현장의 축구 선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체육계의 비합리적인 행정과 부조리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진짜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축구 외에는 다른 분야의 역량을 갖출 기회를 차단당한 채 오직 축구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해 왔을 것이다. 그런 청년들의 희망과 꿈이 공정하지 못한 체육계 관계자들과 비합리적인 행정 절차로 인해 좌절된다면, 그 억울함과 절망감은 누구의 책임인가?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는 지난 7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의 든든한 구심점이자 희망의 청량제였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뤄낸 경제성장의 과정 속에서 한국 스포츠는 국민에게 많은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시절, 온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었던 박세리의 맨발 샷과 박찬호의 강속구, 그리고 지난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가 보여준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은 우리에게 커다란 용기와 자부심을 선사했 다.
하지만 이제는 스포츠와 국력, 혹은 애국심을 동일시하던 시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과거의 승리 지상주의와 국가주의적 시각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 운동선수들은 국위선양을 위한 도구나 메달을 따오는 '운동기계'가 아니며, 국가대표 스포츠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독자들의 PICK!
선수의 건강과 인권을 성적보다 앞에 놓고, 선발과 지도자 선임, 징계와 지원의 기준을 더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 체육인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은퇴 이후의 삶까지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에게 말할 권리를 줘야 한다. 훈련과 전술, 부상 치료에 대한 합리적 의견이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직에서는 창의적인 선수도 건강한 팀도 나오기 어렵다. 안세영 선수의 용기 있는 목소리나 축구협회를 향한 대중의 뜨거운 개혁 요구는,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이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명확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은 메달 개수로 국위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는 국가대표팀을 둔 나라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몸도 튼튼'한 선수를 만드는 데 익숙했다. 더 빨리 뛰고 더 오래 버티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를 칭찬했다. 이제는 '마음도 튼튼' 한 선수를 만드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하고, 부당한 일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며, 승패와 관계없이 한 인간으로 존중 받는 선수 말이다.
몸도 튼튼하고 마음도 튼튼한 대한민국의 운동선수들이 그라운드와 코트 위에서 마음껏 웃으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치유를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