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많은 기술부채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어요."
기자가 수 개월 전 만난 어느 금융사 개발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부채는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 임시방편으로 지름길을 택했을 때 발생하는 미래의 작업비용을 가리킨다. 흔히 침대 밑에 쓸어 모아둔 먼지 더미로 비유하곤 한다.
A씨는 판교의 한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금융권으로 이직하니 석기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코딩 덕을 보고 있는지 묻자 망분리 규제 탓에 너도나도 쉬쉬하며 휴대전화로 근근이 '커닝'만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지막 유지보수가 언제인지도 모를 내부 IT 서비스들은 외면 속에 조용히 돌아갔고, A씨의 동료들은 기획부서에서 연례행사처럼 보낸 고객용 앱 개편안을 놓고 씨름했다고 한다. 시스템별로 흩어진 외주업체에 전화를 돌려가며 보채는 일은 그들에게 일상적인 업무다.
경영진의 관심사가 실질적인 인공지능 전환(AX)보단 멀쩡한 앱을 개명하는 일 같다는 A씨의 푸념은 각종 침해사고로 여의도 증권가를 비롯한 전 금융권이 홍역을 치르는 지금 곱씹게 된다. 매년 IT에 적잖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지만, 외견상 눈에 띄는 성과를 내라는 압박에 떠밀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것으로 보여서다.
최근 금융권 침해사고에선 회사 시스템의 주변부로 여겨지는 업무지원 서비스가 침투경로로 악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당국의 불호령이 떨어진 가운데, 몇몇 회사는 과거 스스로 개발하거나 사들여 운영 중인 시스템의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들통나는 촌극을 빚었다. 기술부채가 얼마나 높이 쌓였는지 보여주는 징후라고 개발자들은 이야기한다.
사고가 터지자 일각에선 실무진의 기강 해이를 탓하며 문책을 입에 올린다. 하지만 땜질 보수와 외주 관리에 내몰린 실무자에게만 화살을 돌리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일이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급급해 노후 시스템 정비라는 기본기를 뒷전으로 미뤄온 건 다름 아닌 의사결정권자들 아닐까.
기술부채는 재무상태표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줄곧 등한시돼 왔다. 그러나 방치된 이 부채는 결국 해킹이라는 가장 비싼 청구서로 돌아와 고객 신뢰라는 핵심 자산을 갉아먹고 있다. 침대 밑 먼지를 방치해 온 그간의 관행부터 되돌아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