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일환 코만스포츠웨어 회장

30여 년간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부를 일군 70대 재미사업가가 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그에게 주변에선 여유로운 삶을 즐기라고 권했지만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5년 전 한국행을 택했다.
주머니는 비우고 대신에 가슴을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미국 이민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엘리스 아일랜드상'을 최근 수상한 조일환(72ㆍ사진) 코만스포츠웨어 회장의 얘기다.
조 회장은 1971년 미국에 건너갔다. 국내 무역회사에서 뉴욕 주재원으로 일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독립했다. 미지의 곳에서 성공하리라 결심했다. 당시 그에겐 아내와 돌을 막 지난 딸, 그리고 수중에 800달러가 있었다. 처음에는 소매업체를 상대로 보따리 장사를 했다. 그러다 1974년 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도매업자로 변신했다.
◇"우직해야 성공합니다"
회사는 고속 성장했다. 첫해 24만 달러 매출의 코만스포츠웨어는 이제는 연매출 2500만달러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체 브랜드로 미국 전역 3000여 개 소매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더구나 이 같은 성공에는 투명경영에 앞장서고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정도 경영이 뒷받침됐다. 그가 미국 한인의류업계에서 대부로 통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물량 전체를 분실하는 사고를 겪고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8년 연속 적자로 은행 빚이 늘어나 회사가 생사의 기로에 서자 창고 건물을 매각하고 집을 담보로 잡히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수차례 위기를 극복하며 그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밝히는 비즈니스 철학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 우물을 파야 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면 한눈을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사가 어려울수록 모아놓은 돈을 전부 재투자해야 합니다. 비즈니스는 잘될 때와 안될 때 사이클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고객이 만족하게 해야 합니다. 내 물건을 가지고 간 사람들이 이윤을 얻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비즈니스는 저절로 됩니다."
그는 성공에 대해서는 "너무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에 충실할 때 성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좀 어리석게 보이더라도 우직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황소같이 쭉 밀고 가는 사람이라야 성공합니다. 그러면 늙어서 돈이 있게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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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고생의 대가를 만끽하기보다는 2005년 한국에 돌아왔다. 비워야 할 것과 찾아야 할 것을 분명하기 위함이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궁극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나' '사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나' 등과 같은 질문 말입니다. 해답을 얻지 못할망정 공부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1학년생으로 입학했다. 젊은 세대와 어울려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구해 자취생활을 5년째 하고 있다. 회사는 아내에게 맡겼다. 지난 2월 학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객원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인생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지난 15일 찾아간 그의 학교 연구실은 조그마했다. 그곳에서 그는 찾아오는 학생들을 환하게 웃으면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생활이 행복하다"며 앞으로 장학사업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국 콜럼비아대에 150만 달러를, 동국대에는 자신이 설립한 만우장학회를 통해 학생들 해외연수 기금으로 50만 달러를 기탁했다. 코넬대와 영국 옥스포드대에는 한국 관련 서적 구입비를 기부하기도 했다.
"내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면 그 이상의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 돈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주인이 돼야 합니다. 돈의 가치는 많고 적고,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어떻게 값지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국내 학생들의 해외 견문을 넓혀주고, 미국 학생들에게는 한국을 알리고 싶은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염화시중의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