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취업하지 마" 대졸하향 지원에 고졸 반발

"위장취업하지 마" 대졸하향 지원에 고졸 반발

배준희 기자
2011.10.13 15:07

대기업 관계자 "학력 위조시 사규뿐 아니라 법적 해고사유"

수도권 사립대의 환경공학과 3학년 김모씨(22)는 얼마 전 한 대기업 반도체 관련 하청업체에 고졸자로 학력을 낮춰 지원했다.

김씨는 토익 900점 이상, 전공 분야 자격증, 학점 4.0 이상 등을 갖추지 못해 스스로 '스펙'이 변변치 못하다고 판단, 고졸자 채용공고를 본 후 원서를 낸 것. 그는 "자기소개서에도 4년제 대학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기재했지만 고졸로 지원했다"며 "취업이 되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크루트(대졸 이상 신입구직자 404명 이메일 설문조사)
ⓒ인크루트(대졸 이상 신입구직자 404명 이메일 설문조사)

13일 대학가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취업을 위해 스스로 학력을 '고졸'로 낮춰 하향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이 많이 몰린 대졸 출신들의 취업시장보다는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졸자 전형에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고졸 출신들의 고용 불이익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부터 인사규정을 정비, 고졸 입사 후 4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대졸자와 동등한 직위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가운데 주요 포털사이트의 취업 카페에는 고졸로 지원해도 괜찮은 지를 묻는 대졸자들의 글도 상당수 올라와 있다.

취업 카페의 한 회원은 "4년제 출신인데 고졸로 이력서를 내도 될까요"라며 "엔지니어링 회사 생산직에 원서를 쓰고 싶은데 고졸이랑 초대졸만 뽑는다고 해서 고민"이라는 상담 글을 올렸다.

극심한 취업난을 견디다 못한 일부 4년제 졸업자들은 아예 학력 자제를 고졸로 속여 위장 지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졸 출신 대상 전형에 대졸로 지원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최근 고졸 우대 분위기가 확산되자 학력 자체를 위장해 지원하는 것이다.

ⓒ인크루트(대졸 이상 신입구직자 404명 이메일 설문조사)
ⓒ인크루트(대졸 이상 신입구직자 404명 이메일 설문조사)

4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기사, 건설안전산업기사 등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한 취업카페의 회원은 "절박한 지라 고졸로 지원을 하려고 한다"며 "전공 무관하게 지원할 수 있는지, 지원된다면 이런 자격증이 도움이 될지 좀 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도 "L그룹에서 이번에 고졸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채용을 한다더라"며 "등급은 다르고 대졸이지만 스펙이 별로라서 여기 지원해보려는 데 여기라도 되면 다행"이라고 푸념했다.

대졸자들이 고졸자 취업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얻어가는 경우도 있다. 일부 대졸자들은 '고졸 학력으로 대기업 생산직 입사 경험담'을 묻거나 공유하자는 글도 올라온다.

이처럼 고졸 우대 분위기를 활용해보려는 대졸자들까지 고졸 취업 시장에 가세하면서 이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나타난다. 한 전문계고 졸업생은 "전문대 졸업자나 대졸자들까지 고졸 생산직으로 몰리다니 고졸 출신으로써는 슬프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www.incruit.com)가 최근 대졸 신입 구직자 404명을 대상으로 '기업의 고졸 채용 확대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0.3%가 대졸 구직자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역차별이 아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59.7%)보다 적긴 했지만 상당수가 고졸 채용 확대로 손해를 볼 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입사 지원자들의 학력을 조회하는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하지는 않고 졸업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확인하는 정도"라며 "그러나 학력을 위조할 경우 회사 규정뿐만아니라 법적으로도 해고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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