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부터 시내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약용(정직·약속·용서) 프로젝트'라는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세 가치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돕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영훈국제중을 둘러싼 문용린 교육감과 시교육청의 '말 바꾸기' 행태를 보면, 정작 정약용 프로젝트가 절실한 곳은 시교육청이 아닐까 싶다.
검찰 수사결과를 통해 재확인된 영훈중의 편입학 비리 실태는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2012·2013학년도에 올해 학생 867명의 성적이 조작됐고, 학부모 5명은 입학을 대가로 한 명당 2000만~3000만원을 영훈중 관계자에게 건넸다.
앞서 문 교육감은 영훈중의 국제중 지정을 취소하라는 국회의원·시의원들의 요구에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면 지정취소 등 조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었다. 하지만 수사결과 발표 이후 시교육청이 내린 조치는 영훈학원 이사 전원 교체였다. 16일 시교육청 기자실에서 열린 비공식 브리핑에서 이재하 교육행정국장은 "현행 법으로는 2015년 상반기 운영성과 평가가 이뤄지기 전까지 국제중 지정을 취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문 교육감은 현 시점에서 불가능한 조치를 검찰 수사결과를 전제로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명시된 내용을 문 교육감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문 교육감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의 발언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서울시의회 본회의·교육위 회의록에 기재돼 있다.
문 교육감은 전날 브리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브리핑 직전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 김관복 부교육감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의 지정취소 관련 질문은 권한이 없는 직원들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편입학 비리를 운영성과 평가에 반영할지 여부에 대한 답변은 직원들마다 달랐다.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주어지는 서울시교육감이라는 직함은 '막후 행정'이 용인되는 자리가 아니다. 교육감의 권한이자 의무인 교육자치는 적절한 판단이 전제돼야만 이뤄질 수 있다. 편입학 비리가 국제중 지정취소 사유에 해당하는지조차 판단하지 않는 교육감 아래서 제대로된 교육자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