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있게 한 1등 공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정권의 2인자'이다.
이 후보자와 이 대통령의 인연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은 당시 고려대 상과대 학생회장으로, 이 후보자는 중앙대 한일회담반대구국투쟁위 위원장 자격으로 시위를 주도하며 운동권 동지로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반 이 대통령이 6.3 동지회 회장을 맡을 때 이 후보자가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 후보자와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 15대 국회의원으로 나란히 당선되면서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후보자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선대위원장을 맡았으며 당선 후 이후 서울시장직무인수위원장을 지냈다.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창과 방패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정권의 '2대 주주'로서의 영화는 길지 않았다.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패하고 '자의반 타의반' 유학길에 올랐다.
따지고 보면 그의 낙선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때문이었다.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최대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위해 '대운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이 대통령과 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박근혜 전 대표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귀국한 이 후보자는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돼 현장을 누비는 등 '낮은 자세'로 국민에 다가간 끝에 지난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큰 표 차이로 꺾고 다시 당선됐다.
1991년 민중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르는 등 재야운동을 했다.
△경북 영양(65) △영양고 △중앙대 경제학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 △민중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사무총장·원내대표·최고위원 △17대 대선 한나라당 선대위 부위원장 △17대 인수위 한반도대운하TF 상임고문 △국민권익위원장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