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자산의 사유화를 진행할 신탁관리청을 발족했다. 신탁청은 1만2500개가 넘는 동독의 기업을 비롯, 건물과 토지 등이 5000억~최대 6500억 마르크의 가치가 있다고 집계했다. 이들의 사유화를 통해 통일 비용을 분담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유화 계획은 이내 ‘순진한 판단’으로 드러났다. 공산화 이전의 소유권이 불분명했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의 매각가치는 떨어졌다. 신탁청은 동독자산의 가치가 1800억~2500억 마르크라고 수정 발표했고 94년엔 이 추정치가 670억 마르크로 뚝 떨어졌다. 2002년 사유화 최종 결산 결과는 흑자는커녕 2300억 마르크 적자다.

통일전 헬무트 콜 총리는 통일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약속했지만 사유화 실패로 연대세(통일세) 부과는 불가피해졌다. 결국 이 문제는 현재도 ‘오시’와 ‘베시’를 구분 짓게 하는 최대 갈등 요인으로 남았다. 경제적 통합 없이는 사회적 통합도 완성할 수 없다는 교훈이 와 닿는다.
이와함께 20년간 독일의 경험은 치밀하고 정교한 통일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이슈가 됐던 이른바 통일세다.
우리의 경우, 통일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까지 나온 통일 비용 추산엔 적게는 수백억달러에서 많게는 수조달러까지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현재 남북한간 경제력 격차는 20년 전 동서독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양측 소득수준의 경우 독일은 2배였지만 우리는 18배나 차이가 난다. 양쪽 차이가 크면 클수록 통일 비용도 늘어난다.
특히 북한 체제가 급작스레 붕괴하는 경우, 부담해야 할 통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서중해 박사팀은 2011~2040년 30년 동안 점진적 통일일 경우, 연평균 100억달러의 통일 비용이, 급진적 통일일 경우, 7배가 넘는 연간 720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각각 추산했다.
따라서 통일 비용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다만 세금부과에만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주변국 다독인 '2+4' 외교, 일부 권리포기 불가피= 동서독 통일 과정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분야는 정치 외교적 통합이다.
독자들의 PICK!
서독의 정당 구조가 동독으로 그대로 옮아갔다는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이 빠르게 확립됐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서독의 콜 총리와 집권 기독민주당이 보여준 단호한 결단과 신속한 대응은 이해 다툼 속에서 흔들릴 수 있었던 통일 논의의 주도권을 독일이 거머쥘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와 함께 외교적 측면에서 통일 당사자와 주변 4개국 간의 ‘2+4’ 외교가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콜 총리는 독일이 다시 팽창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통일에 미온적이던 영국, 프랑스를 설득했다. 나치침략의 상처를 안은 폴란드에게는 국경선 유지를 약속했다.
이 과정 중에 통일을 위해 일부 권리를 포기하는 결단도 내렸다. 독일은 1990년 코카서스 회동에서 통일 후 비핵화 고수와 병력 제한(37만명)을 약속했다.
이처럼 통일은 주변국의 협조와 지지가 필수다. 우리 역시 통일 국면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자면 유무형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 특히 통일 한반도의 비핵화 선언은 불가피하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 점에 대비, 국내정치는 물론 외교협상력을 높이는 노력을 지금부터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