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보면 기존 정당의 패배, 대선 구도 요동일 듯
정치판에 전에 없던 새로운 실험이 성공했다. 여야 간 전통적 대결이 아니었다. 여당 후보와 범야권 무소속 후보 간 사상 초유의 대결이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반짝 스타'로 부각되며 돌풍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그 뿐 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무소속 간판을 달고도 시민사회 진영이 승리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불신에서 비롯된 '안철수 돌풍'이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안풍(安風)'의 실체 여부를 놓고 말도 많았지만, 그 실체가 확인됐다. 한나라당의 완패지만, 넓게 보면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정당의 패배다.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일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민심과 현실정치 사이에서 괴리감을 보였던 정당들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현 정당 구도의 판이 새롭게 재편되는 것은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구도까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 등 정치권이 격랑에 빠져들 거란 의미다.

무엇보다 '안풍'이 '박풍(朴風)'과 더해져 초대형 태풍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민사회의 급부상이다. 이번 승리를 계기로 야권 대통합 작업이 가속 패달을 밟을 것이란 데 이견이 없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포함한 제3세력은 이 과정에 주도권을 쥐고 내년 정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나아가 신당 창당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의 상황은 간단치 않다. 박 후보의 승리에 안도하며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대여 관계에서도 향후 국정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제1야당으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참담함을 맛봤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위기론'이 재부상하며 당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기 쉽지 않게 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과 통합', 시민진영과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불가피해졌다.
여권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될 게 분명하다. 한나라당에선 선거 패배에 대한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며 변화와 쇄신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험악한 민심을 재확인한 서울 지역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 자칫 당이 분열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선거 전면에 나섰던 여야 대선 주자들의 입지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안 교수는 박 후보의 승리로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영향력을 넓히면서 범야권 통합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됐다. 안철수의 '편지'와 박근혜의 '수첩'으로 상징됐던 대선 전초전에서 일단 우위를 점하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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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예상을 깨고 적극적인 선거 지원에 나섰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는 부정적 결과가 나왔다. 선거지원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시민과 접촉을 늘리며 행보를 넓힌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런데 반 MB 정서 탓도 있지만, 수도권에서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게 재확인됐다.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당장의 지지세가 꺾이진 않겠지만 대선을 앞두고 악재임에는 틀림없다.
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해 사의표명까지 했다 재신임을 받은 손학규 대표는 선거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박 후보 승리로 체면치레를 할 수 있게 됐다. 올 연말 임기가 끝나지만, 복잡한 야권 통합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면 향후 대권 가도에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이사장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였던 부산동구청장 선거에서 이해성 민주당 후보가 정영석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한 게 뼈아프다. 하지만 36%에 해당하는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는 평가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아울러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후보 승리로 시민사회 진영 등 야권 통합 작업이 가속화되면 보폭을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