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랍 31일 오후 10시47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면서 새해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시작됐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 의원들도 뒤따라 회의장에 들어섰지만 예산안 표결이 시작되자 퇴장했다. 결국 예산안은 여당 단독 표결로 국회를 통과했다. 18대 국회가 4년 연속 예산안 합의 처리 실패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순간이었다.
여야는 이날 오전 10시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 처리에 합의해 18대 국회 첫 합의처리 전망을 밝게 했다. 그러나 론스타 감사, 방송광고판매대행법(미디어렙법)이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하면서 마라톤협상을 진행했고 본회의도 계속 미뤄졌다.
첫 합의처리를 위한 불가피한 산고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야당은 법안 '끼워넣기'를 욕심내다 아무 것도 건지지 못했고 여당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채 '불통본능'만 과시했다.
민주통합당은 국민적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지만 여당은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야당 역시 귀를 막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당이 론스타 청문회를 먼저 실시한 후 필요할 경우 국정조사를 도입하자고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민주통합당은 예산안을 볼모로 물러서지 않았다.
종편과 종교·지역방송 등 중소방송사의 '사활'이 걸린 미디어렙 법안도 여야의 신경전 끝에 결국 연내 처리가 불발됐다. 여야는 본회의가 끝난 후인 1일 새벽 부랴부랴 문방위 법안소위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처리한 내용도 여야가 사전에 합의했던 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숨'을 놓고 줄다리기만 한 꼴이었다.
결국 여야가 하루 종일 벌인 마라톤협상은 국민을 위한 어떤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반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으로 기소된 국회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이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됐다. 팽팽한 대립 와중에도 '제 식구 감싸기'에는 뜻이 통한 것이다.
새해 첫 날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의 결정과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무거운 소명의식"을 강조했고,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는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 99% 서민·중산층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 '국민'은 안중에 없던 여야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들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