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우려했던 '식물정부'가 현실화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이 9일이나 지났지만,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정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일에도 양측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관할권을 미래창조과학부에 둘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존치 시킬지를 두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탓이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된 건 지난 1월 30일.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국회는 35일째 공방만 벌이며 시간만 허비했다. '여의도 정치가 집을 나갔다'는 말이 제격이다. 협상력 부재의 여당, 명분 약한 발목잡기에 나선 야당, 여기에 여야 갈등을 조정해야 할 청와대는 '대국민 여론전'에 나서며 타오르는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식물국회' 탓에 새 정부는 안보, 경제, 민생 등의 현안이 산적했지만,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껏 정홍원 국무총리를 제외하고, 17개 부처 장관을 한명도 임명하지 못했다. 17명의 후보자 중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예상되는 것도 8명에 불과하다. 경제부총리 등 5명은 청문회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청문회를 통한 이들도 개편안 국회통과 후 임명하겠다는 게 청와대 방침이다.
3월 임시국회도 빨라야 오는 8일 열린다. 3일의 공고기간이 필요한 탓이다. 사흘간 순조로운 협상이 이뤄지면 당일 본회의도 가능하지만, 양측 간 불신의 골이 깊어 기약할 수 없다. 17부3처17청의 차관급 인사까지 하면 3월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정부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말 그대로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어 '임기 초반 6개월 내 공약 70% 처리'라는 박근혜 정부의 '속도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장관 후보자 몇 명이 낙마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초에도 이러진 않았다. 취임 후 나흘째인 29일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당일 한 총리와 11개 부처 신임 장관이 임명됐다. 3월 3일에는 '노무현 정부' 장관 4명이 참석하긴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이날을 포함, 매주 화요일 열리는 국무회의를 2주 연속 열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 회의만 열어 현안을 챙겼다. 박 대통령은 아무 일정을 잡지 않고 국정공백 최소화 방안을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임 후 휴일 포함 4일째 공식 일정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당분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가 국무회의를 대신하는 '비상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내각은 정 총리가 차관과 1급 중심으로 국무를 챙기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장관들은 떠날 사람들로 일상 업무만 보는 등 사실상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편안 처리 시점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이럴 때 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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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로 퇴로가 차단된 야당에게 명예롭게 양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이 문제가 풀릴 것"이라며 "이런 상태에서는 여야 간 협상 타결이 쉽지 않은 만큼 지금과 같은 국정공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