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고위직 '부 ·권력 · 명예' 다 가지려다 낙마...경주 최부자집 가훈 되새겨야
한국의 명가(名家)로 꼽히는 경주 최부자집의 6대 가훈 중 하나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였다. 권력과 부를 다 가지려다보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니 돈은 벌되 권력은 처음부터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6훈 중 이를 맨 위에 올려놨을 만큼 최부자의 조상은 일찍이 이를 경계했다. 우리 속담에 '3대 부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최부자집은 이를 철저히 지킨 결과, 12대 300여 년에 걸쳐 오랫동안 부를 쌓을 수 있었고, 존경받는 부자로 명예도 동시에 누렸다.
최근 최부자집과 달리 '차면 넘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와 권력, 명예를 다 가지려다 낭패를 보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25일 전격사퇴한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20년 넘게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대기업을 변호해왔던 만큼 이들의 불법·편법 행위를 감시해야 할 '경제검찰' 수장으로서 자격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 결정에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거란 우려였다.
결국 해외에서 수년간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해 온 의혹이 불거지자 지명된 지 11일 만에 물러났다. 한국 제1의 세법 전문가로 재산이 100억 원대에 달할 만큼 부를 늘리는 데는 탁월했을지 몰라도 도덕성에는 결정적 하자가 있었던 셈이다. 나아가 외국무기상 고문을 하던 자가 국방장관에 지명되고, 엽기적 사건에 휘말린 이가 법무차관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과 그런 이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청와대 인사·검증라인에 화살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을 했지만, 해외계좌 문제와 같은 것은 현실적으로 짧은 기간에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당혹스러워했지만, 정말 참담한 건 새 정부 출범 후 고구마 줄기 끌려나오듯 벌어지고 있는 '낙마 릴레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이다. "그렇게 사람이 없냐"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대탕평'을 내세웠지만, 첨예한 지역대립에서 초래된 정치·사회적 갈등 탓에 애초부터 인재의 상당 부분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거다.
"맘먹고 숨기려 하는데 짧은 시간 내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냐"는 해명을 십분 수용, 굳이 책임의 선후를 따지자면 한 내정자가 선(先) 청와대가 후(後)라 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집권당 사무총장조차 "결함을 결함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법과 윤리에 둔감하다면 고위공직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이 없다고 하는 귀중한 경험과 선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질타했을까.
불감증은 탐욕을 부를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은 '신상털기'라며 불쾌해 하지만, 고위 공직을 마음에 두는 순간 더 이상 자연인이 아닌 공인이 된다. 국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언론은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없으면 애초 대통령의 지명이 왔을 때 수락하지 말아야 했다. 최부자집이 괜히 '진사 이상의 벼슬'을 포기하고 부를 택한 게 아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뤄 존경받으며 살 수 있었는데 탐욕을 이기지 못해 그 마저도 허물어졌다. 없이 살아도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법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사퇴 후 후임자가 정해지기까지 빚어질 국정차질은 어떤가. 정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