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5~10일 미국 방문 기간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스캔들' 파문이 그야 말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박 대통령은 관련 보고를 받은 뒤 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현지에서 윤 전 대변인을 '대통령 비서실 대변인'직에서 전격 경질하고, 귀국 뒤인 10일(우리시간) 밤엔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명의로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미(駐美) 대사관 인턴 여직원 A씨와 사건 당사자인 윤 전 대변인의 진술이 계속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청와대의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최초 상황 발생 후 미 현지에서 청와대가 취한 조치의 적절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윤 전 대변인의 '단독 귀국' 배경, 그리고 국내로의 상황 전파 시점 등에 대한 의문 또한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사건의 '후폭풍'이 앞으로 어디까지 번질지 예단키 어렵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뿐만 아니라 윤 전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을 초기부터 알고 있었던 인사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상황 대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 등이 새롭게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즉 당시 이남기 홍보수석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윗선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귀국 종용'등의 의문점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남기 靑수석, 사건 인지 26시간 뒤에야 대통령 보고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대한 '경중(輕重)' 판단을 소홀히 했을 것이란 정황은 사건 발생 후 현지에서 청와대 관계자들의 대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처음 인지한 시점이 8일(이하 현지시간) 오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가 이뤄진 시점은 하루가 더 지난 9일 오전이었다.
대통령 방미를 수행 중이던 홍보수석실 산하 국정홍보비서관실의 전광삼 선임 행정관이 8일 오전 7시30분쯤 워싱턴 주재 한국문화원 관계자로부터 "대사관 인턴 여직원이 윤 전 대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면서 울고 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전 행정관은 윤 전 대변인과 현지 문화원 관계자 등을 통해 개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뒤, 당일 오전 9시30분쯤 이 수석에게 이를 휴대전화로 보고했다는 게 전 행정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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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석은 전 행정관과의 통화 직후 박 대통령 숙소인 영빈관 앞에서 윤 전 대변인을 만나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오전 10시30분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미 상·하원의회 합동연설을 위해 이동해야 상황이어서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못한 채 '전 행정관과 상의하라'고만 한 채 의회로 가는 차에 올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뒤 윤 전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 참석하지 않은 채 현지 문화원 관계자를 통해 수행단에서 일괄 보관 중이던 자신의 여권을 넘겨받았고, 당일 오후 1시30분쯤 덜레스 공항을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에 '나 홀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워싱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당일 오후 3시쯤 전용기를 타고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 마지막 기착지인 로스앤젤레스(LA)로 떠났지만, 이 수석은 LA 도착 다음날인 9일 오전 9시쯤에서야 윤 전 대변인 관련 문제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워싱턴과 LA 간에 3시간의 시차가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수석이 윤 전 대변인 사건을 최초로 인지한 이후 약 26시간이 지나서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방미 수행중인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됐다면 이남기 홍보수석은 당연히 그 얘기를 방미 수행중인 정부 당국자들과 공유했어야 했고 대처방안을 협의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수석은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윤 전 대변인 문제를 따로 보고할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이후 워싱턴에서 열린 미 상공회의소 주최 '라운드테이블' 오찬과 LA 동포 만찬 간담회 등의 일정에 모두 배석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구나 이 수석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박 대통령과 함께 워싱턴에서 LA로 이동하는 과정엔 5시간가량의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했다.
아울러 이 수석은 "LA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함께 탑승한 최영진 주미대사로부터 '미 국무부 측에서 윤 전 대변인이 성추행 혐의로 현지 경찰에 신고된 사실을 연락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어, 정황상 당시 대통령 수행차 전용기에 동승한 윤병세 장관을 비롯한 우리 외교부 직원들도 윤 전 대변인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에 대한 별도 보고 및 면담 시간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이 수석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윤 장관이나 수행단에 포함된 다른 수석실 또는 제1·2부속비서관실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윤 전 대변인이 줄행랑치듯 혼자서 귀국한 게 됐는데, 이는 분명히 현지 보고체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윤 전 대변인이 박 대통령의 LA 일정을 동행하지 않은데 대해 당초 수행 기자단에 "부인 건강 등 집에 일이 생겨서 조기 귀국했다"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전달해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의 단독 귀국 경위에 대해 "이 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수석과 전 행정관은 "윤 전 대변인 본인이 결정한 것"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어 "청와대는 당시 현지에서 윤 전 대변인 관련 상황을 공유하고 대처한 인사들이 누군지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우리시간으로 10일 새벽 2시50분(LA 현지시간 9일 오전 10시50분) 이 수석을 통해 윤 전 대변인이 "불미스런 일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경질'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피해자와 진술 엇갈리자 靑 "개인 문제" 선 긋기
12일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윤 전 대변인이 사건이 발생한 7일(현지시간) 밤 워싱턴DC 소재의 한 호텔 바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 관련 업무 지원차 현지 대사관에 채용된 인턴 여직원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것만큼은 '팩트(fact·사실)'로 파악된다.
그러나 A씨는 현지 경찰에 윤 전 대변인을 신고하면서 그가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잡는(grabbed)' 등의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윤 전 대변인은 11일 회견에서 허리를 한 차례 '툭' 치는 정도의 신체접촉만 있었을 뿐이라며 A씨의 주장을 부인한 상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윤 전 대변인이 밤늦게 A씨와 술을 마신데 대해선 "부적절한 행위"였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성추행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 측은 "이번 사건은 윤 전 대변인 개인의 문제"란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사건이 방미(訪美) 수행원에 대한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지휘 책임'·'관리 책임' 문제로까지 비화되는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번 방미를 수행했던 이 수석이 10일 밤 윤 전 대변인 사건에 대한 '사과문' 발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대통령 방미의 공식 수행원이 아니라 일반 수행원이다. 공식 수행원은 8명뿐"이라면서 "개인이 밤 시간에 저지른 개인적 사건"이라고 말한 사실이 이 같은 청와대 내 기류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 수석의 발언이 '청와대 대변인은 방미 공식 수행원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 책임이 없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면 만일 수행 기자단 내부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어떤 얘길 했을지 궁금하다"며 "아직도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박 대통령 방미엔 모두 78명의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수행 취재에 나섰었다.
이와 관련, 다른 여권 인사도 "지금 청와대의 대응 태도를 보면 대통령의 '입'을 하루 아침에 대통령의 '적(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겠지만,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박 대통령에게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에 대해 감싸기에 나섰다면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꼬리자르기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청와대로서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창중 사건' 상황 국내 전파 시점·경위에도 의문 여전
이번 윤 전 대변인 사건과 관련해 또 하나 의문점이 남는 부분은 해당 상황의 국내 전파 시점이다.
윤 전 대변인은 우리 시간으로 9일 오후 4시55분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와 관련, 윤 전 대변인은 11일 회견에서 귀국 뒤 국내 거처로 이동하던 중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성추행 의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곽상도 민정수석은 김행 대변인과 함께 이번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는 기자들과 춘추관에서 떡볶이 등 간식을 먹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더구나 이 자리에선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대형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란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곽 수석이 당일 대통령 비서실의 '당직' 근무자였고, '간식 타임'이 오후 5시부터 약 30분가량 진행된 사실을 감안하면 "윤 전 대변인의 입국 상황을 국내에선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이 한국행을 결정한 뒤 워싱턴 현지시간으로 8일 낮 12시를 넘어 이 수석에게 관련 보고가 이뤄졌다"면서 "이후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등 국내에 남아 있던 참모진에게도 윤 전 대변인의 입국 사실이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여권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취해온 일련의 조치 상황을 보면 국내 언론 등에 이번 사건이 크게 다뤄지지 않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면서 "만일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희석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누군가 그런 의도적으로 그렇게 상황을 관리한 것이라면 그것도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윤 전 대변인을 자르고, 이 수석이 사과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현지 동포 사회에선 윤 전 대변인 외에도 박 대통령 방미를 수행한 다른 우리 측 인사들이 "대사관 인턴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등 추태를 벌였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진위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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