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16·17대 국회입성 실패, 19대국회 당선 2년뒤 의원직 상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14일 충남 출신 이완구 국무총리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에서 보듯 고향인 충남을 중심으로 정치도전을 줄곧 모색했다. 그 과정은 '시련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성 전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국회 입성을 노렸으나 번번이 실패,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사법처리되고 2005·2007년 두 차례나 특별사면됐으나 2014년 세번째 사법처리는 의원직 상실로 이어졌다.
정치도전이 본격화한 건 2000년 16대 총선부터다. 성 전 회장은 그해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에서 탈락한다. 2003년 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지내는 등 김종필 전 명예총재(JP)와 가까워졌고 2004년 17대 총선엔 자민련 비례대표 2번을 단다. 국회입성이 눈앞에 온 듯 보였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자민련은 득표율 2.8%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는다.
JP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성 전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불거진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자민련에 16억원의 정치자금을 건넨 일이다. 이 일로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지만 항소를 포기한다. 그리고 9개월 뒤 2005년 석가탄신일 특별사면으로 사면된다.
정치권을 종합하면 2005년 자민련이 성 전 회장을 특사 대상으로 요청한 건 JP 의중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충남을 정치기반으로 한 점, JP를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로 여긴 것은 성 전 회장과 이 총리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성 전 회장은 첫 사면 직후 참여정부 권력형 게이트로 알려진 행담도 개발비리에 연루돼 다시 사법처리된다. 대선이 있던 2007년, 11월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받은 그는 이번에도 항소를 포기했다. 한달여 뒤인 2007년 말 특사에 포함된다. 사면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 민간 자문위원을 맡는다.
두 차례 사법처리, 두 차례 특사란 이례적 기록을 남긴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 선진통일당 후보로 서산태안에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된다. 하지만 이때 자신의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낸 것이 선거법 위반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벌금 500만원 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16대 총선의 문을 두드린지 12년만에 '금배지'를 달았지만 국회의원 생활은 2년여만에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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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는 2013년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국회 재입성하기 전엔 성 전 회장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004~2005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었고 2007년엔 충남도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