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종합
공사비 떼먹는 '슈퍼갑' 공공기관··건설사엔 '소송철회' 으름장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도로공사는 2014년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거래상지위남용 행위 등으로 시정조치와 함께 총 18억9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공기관이 거래상지위남용 행위로 공정위의 제재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공정위의 심의·의결자료를 보면 도로공사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38개 건설사들과 고속도로 16개 노선(101개 공구)에 대한 도급계약을 하면서 법적근거가 없는 공사 휴지(休止)기간을 두고, 해당 기간 중 발생하는 공사현장의 유지·관리비 등 추가비용(간접공사비)은 청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입찰공고 시에는 없었던 조건이다.
발주처란 거래상지위를 이용해 직접 충당해야 할 추가비용을 건설사들에게 떠넘긴 것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불공정 계약만 6년간 무려 449건에 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휴지기간이 연간 270일에 달하는 사례도 있었다.
휴지기간이 길어질수록 건설사의 부담은 커지지만 국내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불공정 계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이에 도로공사 관계자는 "우리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집행했을 뿐"이라며 "공정위 처분에 불복하고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해명했다.
◇공사비 떼먹고 불복하면 보복하는 ‘슈퍼갑’=19일 대한건설협회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공기연장 추가비용 미지급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기연장 추가비용 미지급은 공공기관의 공사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대표적인 ‘갑질’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A건설사 한 임원은 “과거엔 거래관계 유지를 위해 건설사가 공기연장 추가비용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엔 경영여건 악화로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추가비용을 놓고 공공기관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2013년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12개 건설사들은 서울시가 발주한 7호선 연장구간 공사에서 공기연장으로 141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1심에서 시가 전액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는 즉각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항소심에서도 건설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공기연장 추가비용과 관련, 건설사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건 사례는 알려진 것만 총 25건, 소송금액은 1600억원이 넘는다. 이중 6건은 1심 또는 항소심에서 건설사들이 잇따라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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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업계관계자는 “공기연장 추가비용을 청구하면 이를 무시하거나 아예 소송으로 해결하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며 “하지만 입찰제한, 벌점등의 보복이 두려워 중간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B공공기관의 경우 건설사가 공기연장 추가비용 보상과 관련한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이를 반송처리한 뒤 내용증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까지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보다 무서운 지침” 기재부 수수방관=국가계약법 등에 따르면 건설사(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없는 공기연장 발생시 발주처인 공공기관은 추가비용을 실비로 정산해주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은 총사업비관리지침에 관련 근거가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물가변동, 설계변경 외의 사유로 공사비를 증액하기 위해선 기획재정부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기재부와의 사전협의 부담 등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에 적극 나서지 않고 약자인 건설사들에게만 손실부담을 강요한다는 설명이다.
대형건설사 한 임원은 “공공기관이 공사비 증액을 요청해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최하위 규정이나 다름없는 지침 때문에 법이 작동하지 않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공기연장 추가비용과 관련한 소송과 분쟁이 늘고 있지만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2013년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산업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제도개선에 나서기로 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공기연장 추가비용 문제는 기업의 경영기반을 흔들 뿐만 아니라 발주기관과의 잦은 소송·분쟁 등 사회적 비용낭비만 초래한다”며 “법에 명시된 대로 총사업비관리지침에도 공기연장에 따른 공사비 증액 근거를 마련하고 발주처의 보복행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시장 임금체불 느는데... 6년째 잠자는 임금지급보증제

'세뱃돈 줄 여유 없는 설날, 체불노동자 눈물''추석 앞둔 건설근로자, 체불임금 받고싶다'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는 명절마다 반복되는 도돌이표다. 지난해와 올해 명절에도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매번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지만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건설업의 임금체불 근로자수는 2010년 3만3372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4년 7만742명까지 늘었다. 임금체불액 역시 같은 기간 1464억원에서 3031억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업종 대비 건설업의 체불비율은 유난히 높다. 이 기간 12.6%에서 23%까지 불어났다. 국내 임금체불자 4명 중 1명은 건설업에 종사한다는 의미다.
건설노동자 대부분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저소득층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임금체불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때문에 노동단체를 비롯해 건설노동자들은 임금체불 문제를 적극 해결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 건설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에도 임금지급보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임금지급보증제는 사업주가 보증서를 발급하고, 보증기관은 체불 임금을 우선 지급하되 체불업체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보증비를 내고 지급보증을 받는 주체는 사업주다.
정부도 해마다 반복되는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임금지급보증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논의 부족으로 관련 법안은 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관련법안은 정부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제출한 건설근로자 고용개선법이 대표적이다. 사전적 임금보호 제도인 노무비 구분관리 및 지급확인제도와 사후적 임금보호 제도인 임금지급보증제도를 둔 것이 골자다.
여야 의원들은 법안의 취지엔 동감하면서도 하도급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4년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이게 뜻은 좋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며 "구상권을 행사하고 누군가는 준다고 생각하면 수급업체는 안주고 도망갈 생각을 훨씬 많이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통상 사업주를 거쳐 원청기업이 공사비를 지급해도 영세한 하도급기업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체불이 발생한다. 주로 페이퍼 컴퍼니인 하도급기업이 '야반도주'하면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이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완영 의원은 "실제로 체불이 발생했을 때 해당 근로자의 체불임금을 선지급하는데 진짜 목적이 있다"고 강변했다. 여야 의원들은 법안의 취지에 동의한다면서도 체불임금을 회수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건설업계는 대부분의 건설기업에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원도급사들은 임금 지불을 완료했음에도 하도급기업 노동자들의 본사 시위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며 임금지급보증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부도율이 연간 1%에도 미치지못하고 있어 구상권 청구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기우"라며 "구상금은 대부분 다른 사업장의 잔여공사비로 충당할 수 있고, 건설업 등록시 의무출자금 등을 통해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사비 깎아 놓고 낙찰포기하면 '부정당제재'

정부 및 공공기관이 건설사업을 발주한 뒤 공사비(예정가격)를 임의로 삭감하고 있어 중소건설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들은 공공기관이 제시한 설계금액대로 공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포기할 경우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손해를 감수하는 처지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부당한 사유로 공사비를 삭감하는 사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모슬포 경찰서 출장소 신축공사의 경우 공사비 38%가, 군수사령부의 진해 신흥동 교회 신축공사는 21%가 삭감됐다. 고흥·군산에 인공어초를 놓는 시설공사에선 10%가량 공사비가 줄었다. 대부분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낙찰자인 중소건설기업에 책임지도록 했다. 해당 중소건설기업은 발주처가 공개한 설계금액을 기초로 입찰에 들어갔는데, 일부 금액이 누락되거나 삭감되면서 손실을 떠안은 것이다.
예컨대 100원짜리 제품을 써야 안정성이 유지됨에도 설계금액을 70원으로 계상하는 식이다. 만약 낙찰을 포기하면 입찰보증금이 몰수되고 부정당업자로 지정된다. 낙찰자는 사고위험을 감수하고 70원 제품을 사용하거나 30원의 손해를 입고서라도 안전한 시설물을 만들어야 하는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공공공사 입찰을 포기할 수도 없다. 건설업이 대표적 자전거형 산업(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 수주가 끊기면 폐업하는 업종)이다보니 손실을 보더라도 일감을 떼와야 한다.
대형사가 아닌이상 공사비 내역을 꼼꼼히 따져가며 입찰하기도 여의치 않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바닥난 수주물량과 공사내역서를 추후 작성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중소건설기업이 공사비를 사전 평가하는 전문인력을 따로 두는 것은 '배보다 큰 배꼽'이 될 수 있다.
이러다보니 향후 시설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은 낙찰자가 70원짜리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다.
이 같은 문제는 박근혜정부가 공공기관의 예산절감을 강조하면서 가속화됐다. 부채 감축을 위해 공공기관은 '자린고비식' 공사비를 책정했고, 그 여파가 낙찰기업에게 돌아가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이의신청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삭감된 가격에 대해 입찰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계약심의위원회에서 내용을 검토한 뒤 공사비 산정에 오류가 인정되는 경우 조정된 공사비로 재입찰이나 재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다. 또 공공기관의 귀책사유로 공사비가 삭감돼 낙찰자가 공사를 포기했다면 입찰보증금 몰수를 면제하고 부정당제제 면책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 소속 박성효 의원 등은 이같은 내용의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가계약법 등 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4대강 입찰담합 적발 등으로 건설업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고려해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법안에 관여했던 국회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공사비 삭감은 중소건설업계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으로 건설업 자체가 욕먹던 상황"이라며 "협치와 상생이 강조되는 요즘 재논의 분위기는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