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박영선, 최순실-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통화내용 공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귀국 전 검찰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수습을 위해 사전모의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추가로 공개됐다. 정현식 전 K스포츠 사무총장이 최씨로부터 SK 그룹에 모금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사실을 알고 당황해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전날 공개된 녹취록과 마찬가지로 관련자들과 '입'을 맞추기 위해 지시하는 듯한 내용도 포함됐다.
검찰이 최씨 귀국 후 약 31시간 동안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던 사실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르며 사법당국이 최씨의 증거인멸 및 말 맞추기를 사실상 방조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서 최씨가 독일에서 귀국 전 한국의 지인과 통화한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박 의원은 이 녹취록의 대화 상대가 노승일 K스포츠 재단 부장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라면 통화시점은 지난 10월 27일이다. 최씨가 귀국하기 3일 전 이뤄진 것이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최씨는 노 부장에게 "(정현식) 사무총장이 뭐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냐. 내가 SK를 들어가라고 했다고?"라고 상황을 물었다. 노 부장은 "회장님이 지시를 했고, 최순실씨가 지시를 해서 박헌영 (전 K스포츠 재단) 과장이 기획서를 만들었다. 박 과장과 본인이 그 기업을 방문했고 안종범 수석이 '잘 됐냐'고 확인전화를 했다는 등을 다 얘기했다 벌써.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그럼 어떡하나"라고 걱정하면서 "정 총장이 얘기하는 것을 왜 못막았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노 부장은 "정동춘 이사장과 김필승 이사 등도 막으려 했지만 본인이 너무 완고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노 부장에게 "얘기를 좀 짜보라"며 증언맞추기를 지시하기도 했다.
또 "그 사람이 무슨 감정으로 얘기했는지"라며 불쾌함도 감추지 않았다. 아울러 안종범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안'이라고 지칭하며 "안은 지금 뭐라고 그러나"라고 확인했다. 노 부장은 "안 수석은 어제 기사로는 교체 얘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녹취록을 들려준 뒤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향해 "무엇인가 감추려고 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하지만 정 전 이사장은 "아니다. 막으려 한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으로 보인다"며 "정 사무총장은 제게 '청문요청이 오면 숨김없이 말하겠다'고 말했고 저도 더이상 토달지 않고 소신껏 하라고 답을 드렸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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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가된 녹취록 속 최씨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관련자들이 검찰 조사에 순순히 응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크게 당황하기도 했다.
녹취록에서 그는 노 부장에게 "걔는 쓸데없는 얘기를 뭐하러 해 그거. 그 폰(휴대전화)은 그거 냈대요?"라고 물었다. 노 부장이 잘 못알아듣자 최씨는 재차 "그 폰을 냈대 그래서?"라고 다그쳤다. 노 부장이 "그 폰을 제출했는지 어쨌는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답했고 최씨는 "큰일났네. 뭐라고 얘기해야 돼"라고 당혹감을 나타냈다.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박헌영 전 K스포츠 과장은 녹취록에 대해 "아마 제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며 "'휴대전화를 왜 냈냐'는 이야기가 제가 만들었다는 휴대전화"라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최씨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요구로 휴대전화를 3대 개통했다"며 "제가 1대, 고 전 이사가 1대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 나머지 1대에 대해서는 장순호 플레이그라운드 재무이사가 사용한 사실을 검찰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장 이사는 SK그룹과의 미팅에서 독일의 페이퍼컴퍼니 비덱 대표라며 참석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어떤 용도로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업무용으로 개통했다. 최순실씨와 통화하는 용도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씨) 귀국 후 31시간동안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증거인멸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겠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아마 많은 부분이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검찰수사가 매우 소극적이었지 않나 한다. 그러다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고 젊은 검사들이 강하게 항의해 검찰수사의 속도가 빨라졌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