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MT리포트] 잊힌 공약, '여가부 폐지'

'여성가족부 폐지'
2022년 1월7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단 일곱 글자의 게시물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어떠한 사전 예고도 없이 공개된 파격적인 '한 줄 공약'에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의 일부 스텝들은 '해킹'을 의심할 정도로 내부가 술렁였다. 당시 정책을 총괄한 원희룡 정책본부장이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도 '이게 뭐지?' 했다"며 정책본부에서 미리 알지 못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엇박자가 났다.
이 한 줄 공약 게시물은 2030 세대가 주축이 된 윤 후보의 메시지팀에서 올린 것으로 이후 확인됐다. 선대본부가 슬림해지고 청년 보좌역과의 소통 구조가 간결해지면서 메시지팀의 아이디어가 즉각 윤 후보에게 낙점된 결과였다. 파급력은 컸다. 댓글이 1만개 이상 달렸다. 논쟁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구체적 방안이나 대안 없이 키워드만 띄운 것은 무책임하단 비판도 나왔지만 이슈를 선점했단 점에서 선거 캠페인으로선 효과가 뛰어났던 셈이다.
이를 계기로 대선의 승부처로 지목됐던 2030 남성층의 표심이 윤 후보에게 본격 결집하기 시작했다.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장면 가운데 하나다.

앞서 윤 후보는 당 경선이 진행중이던 2021년 10월 여가부 존폐 문제에 대해 "기존 여가부에서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지원도 함께 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 업무가 아마 기존보다 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처럼 여가부 폐지에 신중한 입장이던 윤 후보가 3개월 만에 여가부 폐지 입장으로 튼 것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무관치 않다. 직전에 이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했단 점, 당시 20대 지지층이 급격히 빠지고 있었단 점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한 공약이란 분석이 나왔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종종 TV토론에서 공격의 빌미가 됐다. '성인지 예산을 삭감해 국방비에 쓰겠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 등의 발언을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 후보와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가 파고들며 비판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대선 막판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등을 겪으면서도 여가부 폐지 입장을 꺾지 않았고, 지난해 3월 대통령 당선 후 정식 공약으로 채택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후 이 공약은 지속적으로 후퇴 논란을 겪었다. 인수위는 김현숙 대통령 당선인 정책특보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국정과제 110개 중 '여가부 폐지'는 제외됐다. 당장 정부조직법 처리가 어려운 국회 상황과 6·1 지방선거에서의 역풍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됐다.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은 정부조직개편안을 인수위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이대남' 사이에선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반면 국정과제 중 여가부가 단독으로 주관하는 과제가 없어 사실상 여가부 지우기 수순에 들어갔단 평가도 나왔다. 성평등 및 여성정책 주무부처로서 여가부의 조정·총괄 기능은 삭제됐고 여가부 주관 업무로 명시됐던 '젠더폭력 방지 국가 책임 강화'도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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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서 여가부는 내내 애매한 입지를 면치 못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 여가부 업무보고는 이례적으로 30분 만에 끝났다. 자체 폐지안을 내겠다며 출범한 여가부 전략추진단은 미미한 활동으로 지적받았다.

지난해 10월엔 마침내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이 발표됐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주요 기능인 청소년·가족·여성정책 및 여성의 권익증진에 관한 사무를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으로 이관한단 구상이다. 여성 고용 지원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한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는 여전히 논쟁과 정쟁의 대상이 됐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여가부를 기능을 바꿔 확대 개편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반대 입장을 냈다. 성평등가족부, 성평등가족청소년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여가부를 폐지해도 기존 기능을 없애는 건 아니고 오히려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 설명했다. 여가부 폐지를 지지했던 일부 '이대남'들은 실망감이 보였다.
결국 지난 2월27일 정부조직개편안은 여야 이견이 극심한 '여가부 폐지'가 빠진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언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야 이견보다도 동력이 약해졌다는 이유가 더 크다. 여성계와 민주당의 반대가 여전한 데다 국민의힘 내 관심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다시 이슈화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난 1년간의 실망감을 딛고 '이대남' 등 기존 지지층이 화답할지 의문이다.

선대본부 청년본부장으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주도했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여가부 폐지뿐 아니라 무고죄 처벌 강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청년층의 환호를 받은 3대 공약에 대한 정부여당 차원의 이행의지가 약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탓만 할 게 아니라 강력한 이행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게 총선 전략이기도 하고 도리라 생각한다"고 자성의 입장을 밝혔다.
장 최고위원은 "당내 특위나 대선 이행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총선 때 다시 대두될 텐데 사전 작업이 없다가 꺼내면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