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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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산업은 우리나라가 차세대에 먹고 살 수 있는 대표적 '먹을거리' '살거리' 사업의 하나다. 세계적 수준의 바이오 입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뇌, 신약개발 등 부문별 전략을 수립, 생명공학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박종구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타격이 예상되는 제약산업의 발전을 위해 범부처적 신약개발 연구·개발(R&D) 종합대책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직접적인 R&D 투자 외에 의약품 허가, 세제, 투자, 인력양성 등과 관련된 제도·인프라도 개선돼야 한다"며 "한·미 FTA 타결이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한 나라의 풍요는 그 나라가 지닌 과학기술력의 경쟁력에 달려있다"며 "이러한 과학기술 경쟁력은 그냥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연구에 대한 체계
장동규 원장은 한국감정원의 재도약을 이끈 개혁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 12월 한국감정원 첫 공모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감정평가 위주의 사업구조를 과감히 개편해 보상수탁사업, 도시정비사업, 부동산정보조사 등 사업영역을 확대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평가업계의 신뢰도 향상을 위해 경쟁관계인 민간평가법인에 가격정보자료를 제공하고 보상평가 검증제도를 도입한 것도 장 원장의 경영 성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감정평가 상품 및 서비스 개발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 시장 상황에 맞는 세분화된 기준을 적용한 감정평가서를 개발해 주목받기도 했다. 장 원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건설부 토지·주택·도시국 사무관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1990년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을 거쳐 1990∼2000년까지 건설교통부에서 입지계획, 택지개발, 주택정책 등 업무를 맡은 건설통이다. 주택심의관 감사관 수송정책심의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건교부 주택도시국장·국토정책국장 등 요직
"공기업이 민간업체와 경쟁해 살아남는 길은 혁신밖에 없습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부문은 무조건 고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국감정원 장동규 원장(59)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감정평가시장이 완전자율 경쟁체제인 만큼 공정한 평가는 기본이고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해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의 기업혁신 모델은 공기업이 시장경쟁에 적응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대 감정평가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었지만 구조조정 등 조직혁신을 단행해 유일무이한 감정평가 공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때 50%를 넘던 시장 점유율이 20% 밑으로 떨어졌고 설사가상으로 2000년 초 자회사였던 '한국부동산신탁' 부도로 채무보증에 얽혀 자본잠식 상태까지 이르렀지만 감정원은 철저한 경영혁신을 바탕으로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감정원은 2001년 65억원 영업적자에서 2002년 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후 5년 연속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공기업으로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림을 이렇게 정의했다.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깊은 삶의 방식이다. 느림은 단순히 빠름의 반대이거나 빠름에 적응할 수 없는 무능력 혹은 민첩성이 결여된 둔감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뜻한다"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이 표현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빠른 성장이 주는 속도감에 취해 자멸하게되는 경영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현실적으로 느림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기업의 성장곡선을 그리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 간신히 붙은 탄력을 꺾는다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크라이슬러를 살려냈던 아이아코카도 이런 유혹에 취해 기업을 역주행 시켜버린 대표케이스로 꼽히기도 한다. 따라서 느린경영을 실천하는 CEO들은 주위의 평판에 개의치 않고 실질적인 성과에 무게를 두는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김광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저축은행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총자산규모가 50조원을 돌파하며 이제는 어엿한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축은행들은 업계 자체적으로도 건전성 개선에 주력하며 선진금융 기법을 도입하는 등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고 위상이 높아지면서 고객기반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일부 저축은행에는 시중은행·보험·카드·증권 등 여타 금융권에서도 제휴를 제안하는 등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성장을 논할 때 빼놓기 힘든 것은 대형사의 약진이 중소업체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지방은행급의 자산규모를 기록중인 솔로몬, 한국·진흥·경기, 현대스위스, 제일·제이원, 부산, 토마토, HK 등의 업무능력이 상당수준 올라가며 전체 업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업무 뿐 아니라 틈새를 파고드는 핵심상품 개발 등에서 앞서나가 시중은행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중심에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있는데 시장
원현수 코오롱 대표이사는 31년을 건설업에 몸담은 잔뼈가 굵은 건설맨이다. 지난 76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27년간을 현대건설 한 직장에서 재직했다. 지난 2003년 7월 코오롱건설로 자리를 옮긴 뒤 3년 만에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현직에 있는 현대건설 이종수 사장, 현대엔지니어링 김중겸 사장 등이 그와 동기다. 이들은 사원으로 입사해 CEO의 자리에 올라선 입지전적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같은 평가에 대해 그는 "특별한 것은 없다.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며 겸손해 했다. 원 대표는 '가족적'인 코오롱의 기업문화에 더해 역동적이고 '북적'거리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내 행사에도 적극적이다. 사내 동호회나 뮤지컬, 음악회 등에도 직원들과 함께 참여하한다. 또 아마추어치고는 성악이 수준급이라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원 대표는 항상 배우기를 좋아하시는 CEO이다. 대표취임 이후 지금도 매주 1시간씩
"물과 불이 우리의 성장동력입니다." 올해 초 코오롱건설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한 원현수 대표이사(부사장)는 환경 플랜트 사업의 국내외 진출을 통해 현 건설경기 침체기를 극복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축, 토목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물과 불과 관련한 환경사업과 건설을 접목한 새로운 플랜트 사업 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대체연료로 쓰이는 바이오에탄올 플랜트 시장의 해외 진출 등 환경친화적인 신(新)재생에너지 산업분야를 코오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있으며 앞으로 대규모 플랜트 프로젝트는 적절한 인수합병(M&A)을 통해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10년 매출액 2조원, 신규 수주액 3조5000억원 이상을 달성해 건설사 '톱 10'에 진입하겠다는 것이 코오롱건설의 중장기 전략이다. 원 대표는 이번 송도 오피스텔 '더 프라우'의 '청약광풍'와 관련, "본인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밝혔다. 원 대표는 "건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만 47세라는 나이에 2300 명을 거느리는 증권사 사장이 됐다. 역대 국내 증권사 가운데 최연소 최고경영책임자(CEO)다. 유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 국제부에 입사한 뒤 20년 가까이 국제업무를 담당해왔다. 대우증권 시절 런던법인 부사장과 메리츠증권 전략영업본부장을 거친 '국제통'이다. 2002년 10월 동원증권 도매 및 IB본부장으로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 출신으로 고려고등학교와 연세대 경영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유 사장은 뛰어난 글로벌 감각으로 5년 간의 철저한 준비 끝에 지난 2005년 본격적으로 베트남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베트남펀드 열풍'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인 셈이다. 해외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탁월한 눈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베트남투자청, 베트콤뱅크증권, 국태군안증권 등 해외 금융기관과 잇따른 업무 제휴를 맺고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진출에
훤칠한 키의 신사가 들어온다.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치곤 너무 젊다. 당당한 '에너지'를 뿌리며 성큼 앞으로 다가선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사진)은 지난 3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증권(옛 동원증권)에 온지 4년 반만이다. "인생을 스타카토로 살아라." 그의 철학이다. "골치 아픈 것을 질질 끌지 말고 딱딱 끊어주면서 살자는 얘기입니다. 주말엔 업무에 관한 건 다 잊어버리고 머리속을 비우는 훈련을 많이 했지요. 근데 사장이 되고 나니 아무래도 그게 잘 안됩니다. 꿈에서도 일 생각을 할 정도예요." 요즘 그의 머리속은 복잡하다. 유 사장은 "취임초라 공식적인 일이 많고 회계년도 기말기초라 몸이 너무 힘들다"며 "1년쯤 지나면 CEO 엔돌핀이 돌아 좋아진다는데 언제쯤 그렇게 될까 싶다"며 웃었다. 그는 첩첩산중 속에 놓여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은 그중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거산(巨山)일 것이다. 해외진출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그가 던진 화두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농업을 무기로 우리를 압박해 왔다면 유럽연합(EU)은 한국에 월등히 앞서는 환경을 가지고 공격할 것입니다." 한·미 FTA 후속 대책을 놓고 공방이 한창인 가운데 이치범 환경부 장관은 한·EU FTA에 대한 걱정과 함께 철저한 대응을 강조했다. EU의 환경규제에 효과적으로 준비하지 못하면 국내 주력 수출길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을 5년여 맡은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환경정책에 관해서는 소신과 신념이 확고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국환경자원공사 사장 때는 환경부 산하기관에 분산돼 있던 폐기물 관련 업무를 공사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각종 환경 현안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논란을 놓고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맞장토론'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확인
"벤처기업협회가 기술경영의 심장이 되게 하겠습니다. 벤처 2세대가 가는 길을 지켜봐주십시오." 백종진 한글과 컴퓨터 회장이 벤처 '세대교체론'을 외치며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을 넘었다. 구심점이 취약한 벤처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공약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벤처기업협회는 한국 벤처기업의 성장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벤처의 범주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산업별ㆍ지역별 협의체들이 생기고, 벤처 관련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됨에 따라 협회의 역할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벤처산업의 신화 재현을 위해 총대를 맨 백종진 회장을 만나봤다. - 지난 2월 협회장 취임사에서 벤처 펀드 500억원을 결성하겠다고 했는데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협회장직 임기 내에 500억원의 벤처 펀드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빨리 실행돼 4~5월 안에는 가시화 될 듯 합니다. 연기금 300억원, 은행권 100억원 등 400억원의 자금이 이미 모집된 상황입니다. 또 50억
김하중 동부저축은행장은 온화하지만 강인한 리더십을 갖춘 덕장으로 동부그룹뿐 아니라 저축은행업계에서도 신망이 높다. 1997년 동부저축은행에 취임한 이래 전문경영인으로는 이례적으로 1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장수비결은 김 행장이 CEO들이 함몰되기 쉬운 단기 경영성과보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당장 성과를 내야 살아남는 CEO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가져온 '금융인으로 정도를 밟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배경이었다. 1967년 김 행장은 한일은행에서 근무했는데, 패기와 열정이 가득해 은행의 보수적인 성향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불만이 쌓여있던 어느날 직장 선배집에서 돼지고기 빈대떡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자연스레 직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고, 선배에게서 여러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은행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라. 은행원으로서 삶을 가고 싶으면 '여치는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