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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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이 당장 효과가 안 난다고 국가가 포기하면 안 된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면 환경은 ‘1000년 대계’다. 우리가 지금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전병성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지난 10여간 크고 작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환경문제가 점차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점을 아쉬워했다. 이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가 손 쓸 틈도 없이 우리 삶 속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는 조금만 더 의지를 가지고 들여다 봤으면 막을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환경공단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지금처럼 경제여건이 좋지 않을 때는 ‘당장 내일이 급한데 무슨 10년, 20년 뒤를 걱정하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진다“며 “하지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수치·가격 중심에서 가치 지향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와 환경은 상극이 아닌 상생”이라며 “오히려 환경 투자나 규제를 소홀히 하면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은 1981년 삼보증권에 입사하며 35년간 증권업계에서만 일했다. 리서치센터장 출신 CEO(최고경영자)로 유명하지만 법인영업, 펀드매니저 등 여러 업무를 섭렵한 정통 '증권맨'이다. 증권사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증권에서 1983년부터 2002년까지 근무하며 경험을 쌓았다. 당시 대우경제연구소 투자전략팀, 대우투자자문 운용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우리증권, 동부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맡았고 한국금융투자협회 경영전략본부장을 지냈다. 2013년부터 2년간 우리선물 대표이사를 지낸 뒤 2014년 8월 IBK투자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 오랜 기간 증권업계에서 쌓은 신 사장의 인적 네트워크는 그의 또다른 재산 중 하나로 꼽힌다. 신 사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선생님'으로 통할 정도로 교육을 강조한다. 2014년 취임 당시부터 '학습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증권사 직원이 시장을 보는 안목을 높이고 보다 정확한 분석을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어느 나라든 살아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우리 경제에 '키'(key)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경제의 총합이라는 증권업계에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정열적인 현역으로 머무르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는 정부와 대기업이 이끌었던 산업화의 시대, 벤처와 부동산 버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신 사장은 그 역할을 IBK투자증권이 선도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반투자자가 소규모 자금으로 여러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중개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결국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 확대가 우리 경제와 IBK투자증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신 사장은 "국내 경제뿐 아니라 주식시장만 봐도 주가가 박스권에 머무르는 이유는 거시 경제지표가 약화된데다 조선, 철강, 조선 등 우리 경제를 끌고 온 중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1월 부임했을 당시 안팎의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던 임 이사장이 첫 민간 출신 이사장일 정도로 중진공은 관료 성향이 강한 조직이었기 때문. 하지만 임 이사장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1979년 설립된 38년차 공공기관을 이끌 적임자인지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와 잠시라도 얘기를 나눠 본다면 특유의 순수함에 호감을 갖기 마련이다. 성격상 관료주의와 거리가 먼 그는 격식을 차리지 않은 직원들과의 자리에도 선뜻 찾아가는 소탈함과 친밀성으로 빠른 시간에 중진공 수장으로 연착륙했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중진공 본사 인근에 '사랑방'으로 불리는 호프집이 있다. 임 이사장 관사하고도 가깝다. 그가 약속도 없이 들러 가게에 있던 직원과 어울리는 경우가 잦아 중진공에서는 사랑방으로 통한다. 직원들은 조직 수장이 자주 '출현'한 술집을 꺼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진공 직원들이 개의치 않고
"수출확대를 위해 앞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이 중견기업에 대해서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 임채운 중진공 이사장(59)이 3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중견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 협력업체에 안주하며 내수시장에 치중된 경우가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임 이사장은 "중소기업을 졸업한 3년 미만 초보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중진공의 R&D(연구·개발) 및 BI(글로벌비즈니스인큐베이터)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수출기업으로 전환하는데 큰 효과를 볼 것"이라며 "중진공이 앞으로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으로 지원 사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청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은 수출기업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임 이사장은 "내수기업을 수출기업화하거나 신시장을 개척하는 건 제2의 창업과 버금가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며 "이를 위해선 1960~70년대 정부가 내수기업을 수출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취했던 인력
'미스터(Mr.) 쓴소리’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사진)의 별명이다. 그는 소프트웨어(SW)업계에서 이름난 ‘잔소리꾼’으로 통한다. 십 수년 간 “SW분야는 교육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했다. 발언도 거침없다. “우리나라에 AI가 정확히 어떤 기술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냉정하게 AI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김 원장은 국내 AI 1호 박사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UCLA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즈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다 ‘내 나라에서 일하자’는 마음에 자발적 연봉삭감을 감행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30여 년 간 카이스트에서 교수를 지낸 김 원장은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자유공개소프트웨어운동본부장, 남북IT교유협력본부 회장, 지식경제부 IT정책자문위원 등 민·관을 넘나들며 IT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내면서는 ‘SW중심사회
“개발자들이 최고 대접을 받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초대원장의 포부다. 다음달 공식 출범할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는 국내 첫 민간주도 인공지능(AI) 연구소다. 네이버,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 KT, 한화생명, 현대차 등 7개 기업이 각각 30억원씩 출자해 설립된다. 연구원의 비전은 명확하다. 출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하면서 공익적인 연구과제도 수행한다. 정부는 5년간 매년 150억원의 국책과제 형태로 힘을 보태기로 했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글로벌R&D센터 5층 연구소에서 김진형 AIRI 초대원장을 만났다. 1세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김 원장은 1983년 미국 UCLA에서 인공지능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대표 SW(소프트웨어) 학자다. 카이스트에서 30년간 후학 양성에 매진해온 학자이자 외부에는 SW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실천가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현재 AIRI호를 함께 이끌어갈
정세균 국회의장(사진)은 민감한 주제를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강단있게 말하는 재주를 타고 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선거연령 하향 필요성에 대해 묻자 단박에 "당연하다"는 답이 나온다. "국회가 당리당략으로 못 하겠다고 하면 한강물에 빠져야 한다"는 식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회 선진화법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미 선진화법이 19대 국회 쟁점법안 처리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고 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견제한 선진화법은 정치지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리는 미묘한 사안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예상밖의 답을 내놓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국회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놓는데도 임명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국회 무시가 아니냐고 묻자 "국무위원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국회 운영에 대한 답변이 분명하다는 것은 국회와 국회의장의 역할에 대한 정리가 그만큼 잘 됐다는 의미
이상진 국가기록원장(54)은 '기록의 행정한류'를 내세우며 지난 2월 취임 이후 거침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등 세계 각국과 MOU를 체결해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베트남, 몽골 등 아시아 10개국 기록관리전문가 34명을 초청해 우리나라 기록관리 성과와 경험을 공유하는 등 실질적 교류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6월엔 비라 로즈포자나랏 태국 문화부장관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 관람을 위해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경기도 평택 출신인 이 원장은 서울대 법학과와 도쿄도립대학교 정치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시 내무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국무조정실 일반행정심의관실 과장과 성과관리과장을 거쳐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1등서기관을 역임했다. 국무총리실에선 보건복지정책과장과 규제총괄과장, 인사과장 등 요직을 맡은 뒤 다시 국무조정실로 옮겨 공직복무관리관과 경제조정실장으로 근무했다. 지난 2월 10일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 동안 매일 같이 왕에 대한 보고 내용과 왕의 지시사항이 빠짐 없이 기록돼 있어요. 1707권, 5000만자에 달하는 대단한 기록입니다. 권력의 개입을 막기 위해 당대 왕들이 못 보게 했어요. 질적으로도 우수한 겁니다." 이상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장(54)은 한국이 전통적으로 '기록문화의 강국'이라며 대표적 사례로 조선왕조실록을 꼽았다. 총 1억1000만건에 달하는 기록물을 관리하는 국가기록원의 수장인 그는 한국이 현대에 와서도 최첨단 디지털 기록관리 기술로 기록물 250만건을 이관하며 선도 중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기록문화 우수성을 기반으로 국가기록원은 기록분야에선 세계 최대 국제행사인 '세계기록총회' 유치를 성사시켰다. 내달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코엑스서 열리는 이번 총회는 역대 최대 규모로 전 세계 190여개국에서 2000여명이 참가한다. 메인행사인 학술회의에선 63개국의 전문가들이 총 246편
권오섭 L&P코스메틱 총괄대표(57·사진)는 화장품 업체 '왕생화학(현 네슈라화장품)' 창업주였던 어머니에 이어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는 2세 경영인이다. 1992년 네슈라화장품 전무로 입사하며 화장품 업계에 첫 발을 들인 후 24년째 한우물을 파고 있다. 하지만 권 대표의 화장품 외길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신세대화장품, 코스피클럽, 차밍코리아, 코스라인 등 다수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해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안에 모두 접었다. 2009년 메디힐 마스크팩으로 대박이 난 L&P코스메틱을 설립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스스로를 "화장품 피가 흐르는 화장품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뷰티사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메디힐 대표상품인 '아쿠아링 앰플 마스크'와 '티트리 케어솔루션' 등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직원과 협력사 관계자에게 "투게더 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쓴다. 사업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만큼 힘을 합치자는 것이 권
국내 1위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로 잘 알려진 L&P코스메틱이 중국뿐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해외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리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메디힐 마스크팩을 내놓는 '유커로드' 영업전략으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권오섭 L&P코스메틱 총괄대표(57·사진)는 "올 3월 뉴질랜드 공항면세점에 처음 입점했는데 첫달에만 45만달러 실적을 올렸다"며 "한국도, 중국도 아닌 뉴질랜드에서 메디힐 마스크팩을 구입하는 유커들을 보고 해외사업 전략에 확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메디힐을 좋아하는 고객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 해외사업도 백전백승"이라며 "'붙이는 화장품' 분야에서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 1등, 세계에서 1등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2012년 매출 75억원에서 지난해 2378억원으로 불과 3년만에 30배 이상 몸집을 키운 괴력의 뷰티기업. 올해는 매출 4000억원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