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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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3~0.4%대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모기지 대출금리만해도 기준금리가 '제로'인 미국이 3%대 후반인데 기준금리가 1.5%인 한국은 2%대로 오히려 더 낮습니다. 국내은행에서 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그 이자수익이 다른 나라 대비 적정수준이냐는 따져 봐야 합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2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성 제고가 은행권에 매우 중대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비(非)이자부문 확대나 해외진출도 필요하지만 이자이익의 적정성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진단이다. 취임 1년을 앞두고 있는 하영구 회장으로부터 국내 은행권의 과제와 연합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들었다. -국내 은행권 수익성이 낮은 이유로 대출 이자율을 지목하셨다. 유독 국내 예대마진이 낮은 원인을 꼽자면. ▶일반적으로 낮은 이자수익의 원인으로 규제와 과당경쟁이 지적된다. 이 중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최고경영자(CEO)의
"금융은 저에게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금융을 할 생각은 없었죠. 첫 직장이 삼성물산이었는데 금융이라는 '업'이 아니라 그저 좋은 직장을 찾아 삼성물산에 들어간 겁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직장보다 직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운명 같은 직업을 찾으라는 거죠. 제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주 해주는 얘기입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국내 최고의 금융전문가로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운명의 이끌림이 있었다고 답했다. 황 회장은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의 국제금융팀장과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투자신탁운용(현 삼성자산운용) 사장, 삼성증권 사장을 지내며 금융의 길을 걸었다. 삼성이라는 '직장'을 선택했지만 그 속에서 금융이라는 '업'을 발견했다는 것.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가게 된 것도 운명이었다. 그는 "우리금융지주에 가서 금융 규제의 문제를 절감하게 됐다"며 "금융에 대한 시야와 견문을 넓힌 게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직장은 그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가 국민통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내년부터 도입되는 ISA가 온 국민이 가입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이 되길 기대한다"며 가입대상이 더 확대됐으면 졸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또 ISA가 국민들의 부를 불려주는 국민통장으로 영구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금융업계의 목소리를 국회와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2월에 취임한 황 회장은 금융에 대한 깊은 지식과 각계의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취임한지 7개월여만에 ISA 도입을 비롯해 해외펀드 비과세 등의 세제개편, 퇴직연금 자산운용규제 완화, 사모펀드 활성화법 개정, 금융규제 개혁 등 업계의 숙원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집무실에서 황 회장을 만나 금융투자업계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ISA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하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경동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공예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LA 인근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영상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당시 NBC 영상감독을 맡았던 그는 귀국해 광고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선우프로덕션에서 CF감독으로 일하면서 해태 에이스크래커 광고로 한국광고대상 제과부문 대상을, 금강제화 랜드로버 광고로 SBS광고대상 의류부문 대상을 받았다. 상업 광고 전문가로 이름을 떨친 그가 제작한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 1997년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이온 음료를 마시고 초록색 인간으로 변하는 게토레이 광고였다. 김 장관은 이 광고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엔 모교인 홍익대로 돌아가 교단에 섰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체부 등 정부에 디자인 관련 자문을 해 주고 한국디자인회장 등을 지낸 그는 지난해 8월 문체부 장관직에 올랐다. 평생 회사를 위한 디자인에 전력해 온 그는 장관직에 오른 후 "이제 커뮤니티, 그리고 국
취임 1주년을 맞아 다시 만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왼손에 스틸 애플워치를 차고 있었다. ‘얼리어답터’(새 제품을 먼저 접하는 구매자)냐고 묻자, 김 장관은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어서 한번 접하면 이것저것 다 분석하는 스타일”이라고 웃었다. 디지털과 동승하는 문화가 대세인 요즘 시각에서 보면 그는 최적의 요인들을 구축하며 한발 앞서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1년 전 취임 당시 ‘게임 폐인’이라며 자신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한 김 장관은 요즘 취미생활로 하는 게임이 있느냐는 물음에 모바일 축구게임 ‘톱11’을 즐긴다며 “이런 거 얘기하면 와이프한테 혼난다”고 다시 쑥스럽게 웃었다.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첨단 디지털 기술을 문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모두 그의 열린 호기심과 개방성 덕분이다. 지난 1년, 그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기획과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7년 완성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태양광은 제 운명이고 사명입니다." 이완근 신성솔라에너지 회장(74)은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 '맏형'으로 불린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업종이 한국에서 태동하기도 전인 1977년 신성기업사(현 신성솔라에너지 전신)를 창업, 이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클린룸설비와 공정자동화장비 등을 잇달아 국산화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전자산업의 성장을 주도한 주역 중 한 명이다. 이 회장은 현재 신성솔라에너지와 함께 신성에프에이, 신성이엔지 등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3개 주요 계열사를 주축으로 연간 6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올리는 중견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전자업종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2007년 태양광 분야에도 진출했다. 태양광은 사업형 지주회사인 신성솔라에너지가 전담한다. 하지만 태양광시장에 불어 닥친 불황 한파로 신성솔라에너지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에 머물고 있다. "올해 상반기 흑자로 전환하면서 한시름 덜었다"고 말하는 이 회장을 만
"제가 태어난 1958년만 해도 한국은 가나, 말레이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국가가 됐습니다. 이런 성과를 이룬 국내 기업들의 기업가정신을 아세안 신흥성장국들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지난 6월 전 세계 70개국의 중소기업 정책기관 및 연구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중소기업협의회(ICSB) 회장으로 취임한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1년간의 임기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구상을 이같이 밝혔다. 김 회장은 대표적인 협력 방안으로 ‘아시아판 에라스무스' 모델을 언급했다. 유럽 내 대학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젝트’ 처럼 아세안 기업간 교육네트워크를 구축,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학위나 인증을 수여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직후 아시아를 방문한 것처럼 세계 경제가 아시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고 웨스트'(Go West)
김기찬 세계중소기업협의회(ICSB) 회장은 대중소기업간 협력시스템과 네트워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김 회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 박사과정까지 밟는 동안 주로 시스템적 기업간 관계, 기업간 네트워킹전략과 시스템경경쟁효과 등을 연구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천착해 완성차 브랜드와 1차, 2차, 3차 협력사간의 관계, 협업, 전략공유 및 동반성장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결과물을 내놓았다. 김 회장은 현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청렴위원회 전문위원,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 산업정책연구원 기업윤리센터장, 중소기업학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제프리 라이커의 '도요타 방식'(The Toyota way)을 국내에 번역, 출간해 도요타 신드롬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 당시 이 책은 인간 존중의 경영과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요타의 '사람 중심 자동화' 경영시스템을 소개, 국내 경영계와 학계에 기업가 정신에 대한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은 기술고시에 합격,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시절부터 2009년 KT를 떠날 때까지, R&D와 신사업, 마케팅을 두루 거친 ICT 전문가다. KT를 사퇴한 윤 원장은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의 권유로 벨 연구소장 특임연구원을 보냈다. ☞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인터뷰 "상상력을 혁신으로, 그것이 창조경제" 2013년 연세대학교 미래융합기술연구소 교수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곧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인수위 시절 창조경제의 토대를 만든 윤 원장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첫 차관에 임명돼 창조경제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도록 하는 일까지 책임졌다. 올해 초 NIPA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차관이라는 부담감을 덜고, 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창조경제를 위한 ‘이매지노베이션’을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는 '호모디지쿠스로 진화하라', '후츠파로 일어서라', '이매지노베이션' 등이 있으며, '창업국가'를 번역했다. △
“천장이 1피트만 높아져도 아이들의 상상력은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천에 와보니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영원한 청년. 이런 애칭으로 불리는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으로 변신했다. 중앙정부 차관 자리에서 산하기관 원장으로 신분이 바뀐 그는 ‘창조경제’의 짐도 함께 내려놨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조금 자유로워진 건 사실이다. “‘생거진천’이란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라며, 최근 NIPA가 새로 둥지를 튼 충북 진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는 ‘살기 좋은 혁신도시’에서 ‘상상력을 혁신으로 연결하기 위한’ NIPA의 변신과 역할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차관 퇴임 후 미국에 머물며 ‘이매지노베이션’이라는 책을 썼다. 이매지노베이션은 상상(Imagine)과 혁신(innovation)을 합성한 신조어다. ‘후츠파로 일어서라’
"제 인생이 15년쯤 남았다고 하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뒤엔 13년이다. 마지막 3년은 집사람과 함께 보낼 생각이니 10년이 남는다. 그 10년간 무엇을 할지가 요즘 고민이다." 5선 국회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의원으로 올라야 할 산은 다 오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또다른 10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연내 일괄통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국회 운영개선 등 굵직한 현안처리로 의장임기 절반을 보낸 정 의장을 국회에서 만났다. ◇퇴임후 10년...'북한 봉생병원' 꿈꾸는 '닥터 정' 외과의사 출신인 정 의장은 퇴임후 북한에서 의료지원을 펼치는 '한국의 슈바이처'를 꿈꾼다. 정치나 의술이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는 매한가지인만큼 앞으로 그의 길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다. 정의장은 "퇴임후에는 장인 고향인 평양과, 장모 고향인 의주에 30병상 정도의 병원을 짓고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의
'부드러운 뚝심' '대장' 등등. 중소기업청 직원들이 한정화 청장에 붙인 별명들이다. 조직의 수장에 대한 신뢰감이 묻어있는 별칭들이다. 사실 2013년 초 한 청장이 중소기업청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첫 민간출신이자 교수출신이라는 점에서 중기청 안팎에선 다소의 불안감이 존재했다. 한 청장의 전공인 중소·벤처분야 이외에도 중기청은 전통시장, 소상공인, 중견기업, 인력 및 기술보호 등 여러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그 불안감이 신뢰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청장의 추진력과 포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다. 한 청장은 정부 내에서조차 반론이 적지 않았던 공영홈쇼핑을 1년 반 만에 개국시키는 뚝심을 보였다. 부처간 협업이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주저 없이 전화기를 꺼내들어 "장관님, 중요한 사안이니 꼭 검토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청장은 잘 알려진 '독서광'이다. 한 청장이 출장길에 오를 때면 한 시간이건 열 시간이건 묵묵히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