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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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미래를 두고 숨가쁜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AI 연구진과 기업 경영자에 이어 미국과 중국 현직 최고 지도자까지 가세했다. 먼저 실무 연구진. 앤트로픽의 연구원 제이콥 콕슨은 지난 8일 회사를 떠나며 충격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지금의 AI 개발 경쟁이 계속된다면 AI가 "2030년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12일 '프런티어 AI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며 최첨단 AI 모델의 능력 향상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했다.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 등도 이 논의에 호응했다. 이들 세사람은 속도조절론이 부각되기 전부터 'AI 글로벌 표준기구 설립'을 물밑에서 논의해 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13일 인도 뉴델리 BRICS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BRICS AI 오픈소스 공동체 구축'을 제안하며 중국이 관련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자 트럼프대통령은 14일 AI 속도조절론을 강하게 비판하며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페이블 5. 1',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까지, 9월은 최신 모델 출시 소식으로 시작됐다. 오픈AI는 이 모델 하나에 GPU 10만 대를 쏟아부었다. 새 모델에 대한 감탄과 해설이 빠르게 쏟아진다.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 며칠짜리 작업도 혼자 끝내는 '에이전트(Agent)'의 등장, AGI(범용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는 찬사까지 이어진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시기일수록 다른 나라의 방향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30년 전인 1995년, 프랑스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고(故) 홍세화 선생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며 '똘레랑스(tolerance)'라는 프랑스어를 유행시켰다. 필자도 그 유행에 휩쓸려 책을 손에 들었다. 그 시절 한국인에게 프랑스는 관용과 자유의 나라로 각인됐다. 30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는 우리에게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이번엔 사회문화가 아니라 기술패권과 리더십의 승부다. 바로 '소버린AI(Sovereign AI)'다.
"AI 개발에 참여하고 돈을 버세요(Get paid to build AI). " 글로벌 휴머노이드 선도기업 피겨 AI가 지난 8월 말 오픈한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인덱스(Index)'의 도발적인 슬로건이다. 참가자가 헤드마운트를 착용하고 생활하는 것만으로 가사·사무·제조 전반의 시선과 손끝 궤적이 신체 행동 데이터로 축적된다. 이 실험이 성과를 거두자 피겨 AI는 향후 1년간 데이터와 컴퓨팅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투자의 본질은 데이터를 쏟아부어 성능을 끌어올리는 '스케일링 법칙'을 피지컬AI에서도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웹상의 3인칭 관찰 영상만으로는 물리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로봇의 미세한 힘조절과 물리법칙을 온전히 학습시킬 수 없다. 시각 정보와 신체 행동이 일체화된 1인칭 데이터를 선점해 '피지컬AI의 챗GPT 모멘트'를 열겠다는 계산이다. 물리 데이터 확보전은 이미 국가 차원의 인프라 경쟁으로 격화되었다. 미국이 구글과 앱트로닉처럼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손잡는 '로봇 파크' 생태계를 구축해 기업연합 전선을 펴는 반면, 중국은 70여 곳의 데이터 공장에 40여 곳을 증설하며 국가 주도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첫 직장인 산업은행 시절의 일이다. 함께 일하던 과장님은 명문 상업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분이었다. 사모님도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다니셨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자랐다면 명문대 커플이 되었을,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분들이었다. 함께 일한 지 반년쯤 지난 어느 날, 과장님이 팀원들을 집들이에 초대하셨다. 강북의 작은 새 아파트에 둘러앉은 그날, 다른 이야기는 다 잊었는데 세 형제의 막내였던 그분의 한마디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평생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져봅니다. " 오랜 셋방살이 끝에 마련한 첫 집이었다. 형 들을 대학에 보내려 자신은 상업고등학교를 택했던 분의 담담한 그 말에, 긴 세월의 인내와 성취감이 담겨 있었다. 30년 전 과장님 집들이의 추억은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정책 당국자에게 주택은 수급 곡선이나 규제 비율, 투기 억제의 대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 집은 투자 자산 이전에,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오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AI 기본의료 전략'은 무척 전향적이다. 의료AI를 산업으로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이 전략이 한국 의료와 의료AI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으며, 남은 숙제는 예산이라고 썼다. 이제 그 예산안이 나왔다. 의료AI는 보건산업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병원에서 응급환자를 선별하고, 영상판독을 돕고, 환자를 적절한 병원으로 의뢰·회송하는 데 쓸 수 있다. AI가 의사 부족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부족한 의료진의 역량을 넓히고 지역 의료의 효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공백을 메울 현실적인 수단인 셈이다. 2027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즉 정부안에는 취약지 일차의료 AX 패키지, 응급 AI 플랫폼, 개인건강기록 기반 AI, 의료영상 공유, 국가 보건의료데이터 허브 등이 담겼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규모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개인건강기록 기반 AI와 의료영상 공유에 387억원, 데이터 허브와 소버린 AI에 349억원이 편성됐다.
AI는 이제 사람과 대화하며 문제 해결을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고, 움직이고, 물건을 다루며 현실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화제의 중심에는 휴머노이드가 있다. 미국에서는 피규어(Figure)와 앱트로닉(Apptronik) 같은 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몰리고 있고, 중국에서는 150여개 기업이 휴머노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도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생산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휴머노이드가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산업현장도 대부분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기존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사람의 일을 하려면 인간과 비슷한 몸을 가진 로봇이 유리하다. 하나의 로봇이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범용성도 매력적이다.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에 투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정교한 손과 안정적인 이동능력, 인간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지능을 갖추게 된다면 산업현장뿐 아니라 가사, 돌봄, 서비스 등 거대한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지난 3일, 문화계에는 두 가지 소식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이틀 앞두고 중국관이 철수를 선언했다. '대만관'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으로 문체부 산하 18개 기관을 7곳으로 묶는다고 발표했다. 통합 명단의 맨 앞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있다. 지금 전국에서 열리는 '2026대한민국미술축제'의 공동 주최 기관이 바로 예술경영지원센터다. 광주비엔날레는 이 축제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한쪽에서 국제행사가 외교 갈등으로 번진 날, 다른 쪽에서는 일손의 통합을 선언한 셈이다. '대만관' 사태는 단순하지 않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대만 문화부는 전시관 이름의 '국립대만미술관' 약칭(NTMoFA) 표기를 6월부터 줄곧 항의했다고 밝혔다. 비엔날레 측은 참여 유형에 따라 국가관과 기관관으로 나눴을 뿐, 행정 절차상의 이견을 검열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결국 '대만관'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고, 이번에는 중국이 반발해 철수했다. 세계적인 미술 행사가 외교적 지뢰를 건드리고도 결론을 내기까지 석 달이 걸렸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새' 일부) 국가교육위원회가 2033학년도 수능부터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겠단다. 내년 3월 확정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2027∼2036년)에 담긴다고 한다. 이번에도 포수(국가)가 납(대입제도 개편)으로 순수(미래인재 양성)를 겨냥했는데, 상한 새(공교육 붕괴)는 피(사교육 창궐)에 젖게 될 것인가. 한국 교육정책사는 미래를 위한 국가적 도전이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였다. 역대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1969), 고교평준화(1974), 본고사 폐지(1980)는 초·중·고생을 순차적으로 '과외'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민주화 이후엔 '시험 대신 전형'으로 응전했다. 수시(1997), 입학사정관제(2007), 학생부종합전형(2015) 등 공교육 강화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사교육은 시험에도 적응하고 전형에도 적응했다. 인구가 줄어도 1인당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났다.
과학기술 강국을 상징하는 지표 중 하나는 노벨과학상이다. 노벨과학상만으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을 평가할 순 없지만,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하면서 과학선진국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벨과학상은 한 나라의 연구역량과 혁신 성과를 세계가 인정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강국은 어떤 나라일까. 세계인이 사용하는 AI 앱이나 플랫폼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AI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거나 세계가 인정하는 AI 연구자와 기업가를 배출하는 나라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AI 강국(AI G3)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에서는 국가 순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시장에서 누가 표준을 만들고, 누가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중요한 것은 국가 순위 자체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기술이 얼마나 실질적 경쟁력을 갖느냐다. 오늘날 세계 AI 시장은 엔비디아, 구글, MS, 메타, 오픈AI, TSMC 등 거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팔로워 수천만, 무대에 등장하면 터지는 플래시 세례. 가수도 배우도 아니다. 인플루언서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이다. 일견 새로운 유형의 스타가 등장하는 시대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을 보고 정책을 보는 필자에게 이들은 새로운 혁신기업의 등장이다. 인플루언서를 필두로 하는 '크리에이터 경제'의 경계는 더 이상 조회수와 광고수익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크리에이터 경제가 2023년 약 2500억달러(약 346조원)에서 2027년 4800억달러( 664조원)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성장의 방식이다. 크리에이터는 콘텐츠와 팬덤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제조기업은 크리에이터와 소비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장을 빠르게 넓혀간다. 콘텐츠가 기업이 되고, 영향력이 브랜드가 되며, 팬덤이 시장이 되는 변화. AI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한다. 많은 직원이 없이도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을 실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성장의 새로운 공식이 출현한 것이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혁신성은 생태계에서 출발한다.
K컬처와 K콘텐츠가 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전파하는 매개체로서 미술관·도서관·박물관 정책이 필요해졌다. 유력한 방안으로 '라키비움'이란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라키비움(Larchiveum)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메건 윈젯 교수가 2000년대에 주창한 정보수집 및 문화에 관한 복합공간이다. 도서관(Library)·기록관(Arcvhive)·박물관(Museum)의 영어 합성어다. 학생들이 학업 관련 정보·자료 수집을 하느라 도서관 이외에 여러 소스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노고를 안타깝게 여겨 위의 세 가지 개념을 통합한 공간 또는 시스템을 구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보관하는 공간과 열람하는 도서관이 협력하고 통합해 나가는 것이 추세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까지 더하는 작업이 가세한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흔히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국립도서관(리슐리외 분관)이 꼽힌다. 라키비움은 가치있는 기록을 분류 보관하고 대여하는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서 다채로운 지식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보 공유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얼마 전인가 진료실에 스무 살 남짓한 여성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생글생글 웃기만 하길래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재 초진이란 등록상황을 보니 과거 내 진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예전 의무기록을 뒤지고 서야 15년 전 오타모반을 치료받던 아이란 걸 알았다. 오타반점은 주로 눈 주위에 푸르스름한 점이 태어날 때부터 발생하는 병이다. 아마도 15년 전 꼬맹이 때 나에게 자주 와서 레이저를 받았을 것이다. 그날 내 눈 앞에는 흔적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 앉아 있었다. 솔직히 의사 노릇 하며 이런거야 말로 진정한 보상을 받는 느낌일 거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 반에 꼭 한둘씩 '점쟁이'란 별명을 단 아이가 있었다. 사주를 봐주는 아이가 아니라 얼굴 어딘가에 점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붙은 이름이었다. 코 점쟁이, 입 점쟁이…. 부르는 쪽은 놀리는 줄 모르고 불렀고, 불리는 쪽은 짐작건대 속이 오래 문드러졌을 것이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