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없이 의료 수행하는 AI 속속 등장
미국, AI 의료의 법적지위 부여 공론화
한국도 자율의료 인공지능 준비해야
인공지능이 의사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의사 없이 인공지능이 독립적으로 진료하고 진단하며 처방하는 것은, 자율주행 기술이 궁극적으로 인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레벨 5'를 지향하는 것처럼, 의료 인공지능이 언젠가 도달하려는 종착점일 것이다.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맞이할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미 현실에서 의사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닥트로닉이다. 2026년 1월 미국 유타주는 이 회사의 인공지능이 '의사 없이'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의 약물 처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물론 논란도 뒤따랐다. 유타주 의료 면허 위원회는 처방 갱신에도 용량 조정이나 부작용 모니터링 같은 실질적 임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곧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사례일 뿐,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물꼬는 이미 터진 셈이다.
사실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18년 FDA 승인을 받은 루미네틱스코어는 의사의 개입 없이 당뇨성 망막병증을 진단하고, 영국의 덤(DERM)은 피부암을 자율적으로 판독하여 보험 급여까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개념을 다시 주목해야 할까. 기존의 자율 인공지능과 최근 등장하는 자율 인공지능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사용 목적의 범위다. 기존 자율 인공지능이 당뇨성 망막병증이나 피부암 같은 '단일 질환'에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여러 질병, 혹은 진료 전반을 다루는 범용적 성격을 띤다. 둘째는 알고리즘의 고정 여부다. 기존 자율 인공지능은 승인 시점에 '잠긴' 채 변하지 않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에 기반한 새로운 자율 인공지능은 프롬프트, 검색 기반 지식(RAG), 가드레일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동적인 시스템이다. 셋째는 출력의 재현성이다. 기존 인공지능은 같은 입력에 항상 같은 결과를 내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같은 환자에게도 매번 조금씩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세 가지 특성은 모두 '사람 의사'의 모습에 가깝다. 사람 의사 역시 여러 질환을 폭넓게 진료하고, 최신 지식에 따라 판단을 바꾸며, 같은 환자에게도 매번 똑같이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2026년 6월 네이처에 발표된 인공지능 MIRA는 응급실 진료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며 전문의 그룹을 상회하는 진단 정확도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특성들이 기존 규제의 전제를 흔든다는 점이다. FDA나 식약처 등의 규제기관은 좁고 고정된, 결정론적인 알고리즘을 전제로 의료기기를 허가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자율적으로 임상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할 것인가.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이미 이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 법체계에는 '약물을 투여할 면허를 가진 임상의'가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2025년 발의된 '건강 기술 법'은 일정 요건을 갖춘 AI를 법률상 '약물을 처방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의료인'으로 인정하자는,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에 의료 행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미 공론의 장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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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도적 준비는 대부분 미국의 이야기다. 이 법안이 처음 나왔을 때 한 전문가는 "이런 인공지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며 시기상조라고 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닥트로닉이 등장했다. 미래는 늘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온다. 이제 한국도 자율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