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깊이 있게 전합니다. 생생한 이야기와 진솔한 답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하는 뉴스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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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교육은 검증된 학문입니다. 태권도처럼 한국의 정신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뇌교육의 창시자인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64)의 포부다. 이 총장은 홍익인간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국식 명상과 뇌과학, 교육학, 심리학 등을 융합해 뇌교육을 학문의 영역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는데 태권도, 합기도 수련을 하면서 기(氣)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명상, 단전호흡, 생체에너지 등 다양한 수련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의 운용이 뇌파와 연관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이 총장은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을 통해 뇌교육의 효과를 검증해 나가는 한편, 미국법인 BRC(비알컨설팅)를 통해 뇌교육 해외 수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BRC는 최근 중국 유다 회사와 10년간 100억원의 로얄티를 받는 수출 계약을 맺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의 이 회사는 3년간 뇌교육의 효과를 조사 및 검증
파스텔 톤의 물보라, 그 위를 옅게 뒤덮은 해무. 파도의 끝이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바위 위에 한 여자가 서 있다. 작은 바위의 운명처럼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이 여인은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있을까. 여자가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파도는 몰아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여자도 그렇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다해도, 물러설 의향이 없어 보인다.(사진작 ‘중산간 3-1’) 사진작가 고현주는 이 지점에 주목한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계의 지점, 파도의 속살과 인간의 뒷모습이 만나는 애매한 정체성이 엮은 교착의 상태를 그는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재개발아파트’ 시리즈와 ‘기관의 경관’에 이어 8년 만에 펼치는 고현주의 신작전 ‘중산간(重山艮)’은 숨은진실찾기 게임 같기도 하고, 깨지고 부딪힌 우리네 인생이 뒤늦게 낳은 순응의 교훈 같기도 하다. 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강남의 갤러리 이마주에서 열리는 이 신작전은 전작의 전시와 비슷한 형식으로 꾸며진다. 소위 ‘제한적
"2~3년 내 한국 5대 증권사로 입지를 확보하고, 배당을 대만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허밍헝(Ming Hong Ho) 유안타증권 회장이 지난달 31일 대만 타이페이 유안타증권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허 회장은 "한국 유안타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했고 이는 대만 유안타에 있어서도 중요한 결정"이라며 "향후 2억~3억 달러 수준의 추가 투자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만 유안타증권의 경우 지금까지 60~70% 정도의 배당성향을 보였는데 한국 유안타도 수익이 충분히 난다면 대만수준까지 배당을 확대할 의향이 있다"며 "지금은 예전 동양증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최근 이목이 집중된 후강퉁 시행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중국 상하이(上海) 증시와 홍콩(香港) 증시 투자자들의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후강퉁은 시행이 한 차례 연기됐으나 최근 중국 당국 및 거래소가 시행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기대감이 커진 상태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사진 한 장에 이호준 시인의 짧막한 시 한 편이 걸린다. ‘먼 길 떠난 길안댁 비탈밭에 묻고오니/우물가 늙은 감나무 늦은 조등 켜놓았다/붉은 눈물 그렁그렁 내달았다/그동안 혼자 산게 아니었구나’(‘홍시’) 디지털 카메라에 입힌 시 한편에 감흥을 얻은 또다른 시인이 해설을 단다. ‘이별은 늘 막막하다. 준비한 이별이든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든 황망하기 그지없고 막막하기 그지없다.~’ 머니투데이에 매주 연재되고 있는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의 일부 내용이다. 시인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이 불러오는 시상을 글로 풀어내는 형식이 디카시(디지털카메라+시)다. 최광임 시인은 머니투데이 연재에서 좋은 디카시 작품을 골라 해설을 덧붙여 소개한다. 디카시는 2004년 창신대학 이상옥(시인) 교수가 한국문학도서관에 디카시 작품 ‘고성가도’를 연재하면서 시작됐다. 이 교수로부터 출발한 디카시는 최 시인의 열정을 타고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이 교수
"학생들이 취업 준비 시간을 늘리기 위해 취업계를 악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생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대학이 학문과 취업률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취업률이 대학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되면서 교육기관이라는 존재의 의의가 흔들리고 있는 것. 대학가에 이른바 '취업계'라 불리는 암묵적인 제도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취업계는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이 학기 중에 채용이 확정되면 재직증명서 등의 서류를 교수에게 제출해 출석을 인정받는 행위다. 출석은 인정되지만 지필고사를 보거나 리포트 등을 추가로 제출해야 하고 좋은 학점을 기대할 수 없다. 대학에서 공식적인 제도로 존재하지는 않고 보통 교수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교수의 재량에 맡긴다는 대목이다. 수업권이 교수에게 있으니 취업계의 인정 역시 교수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취업계의 인정여부를 두고 학생과 교수가 대립하는 경우도 잦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경력개발센터를 맡고
“끊임없이 퍼주기만 한 바보같은 뮤지션이었어요.” 지난 1994년 신해철이 이끄는 그룹 넥스트에 참여해 2012년까지 무려 18년간 신해철과 동고동락해온 기타리스트 김세황(43)은 고 신해철을 ‘착한 바보’로 기억했다. 29일 오전까지 ‘마왕’의 빈소를 지키던 그는 머니투데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겉으로만 ‘악’한 척했지, 마음은 순수하고 여렸다”고 말했다. 김세황과 신해철의 만남은 대중과 평단의 절대적 찬사를 받은 넥스트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I:The Being’부터다. 신해철은 이 음반 수록곡의 데모를 만든 뒤 김세황을 청담공원으로 불러 수록곡 중 ‘껍질의 파괴’를 들려줬다. “그때 형은 우유를, 전 콜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어요. 형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곡이라고 들려줬는데, 듣다가 콜라를 쏟을 뻔했어요. 우리나라 록 환경에서 이런 멋있는 음악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때 제가 ‘다운타운’이란 그룹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무조건 음
실크로드(비단길)이라 불리던 도로는 기원전 동서양을 하나로 잇는 통로였다. 오늘날 실크로드를 자처하며 세계인들과 소통에 나선 음악가들이 있다. 첼리스트 요요마(59)와 그가 이끄는 다국적 앙상블 ‘실크로드 프로젝트’다. 1998년 요요마는 한국, 중국, 몽골, 이란, 인도. 터키 등 옛 실크로드 지역에 위치한 국가의 음악가들을 모아 실크로드 앙상블을 구성했다. 음악을 매개로 동서양의 문화를 잇고 연주자와 관객이 화합하는 무대를 꾸며온 이들이 15주년을 맞아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기념 공연을 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효성그룹의 메세나 활동으로 기획됐다. 실크로드 앙상블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김유영씨와 요요마의 특별한 인연 덕이다. 2004년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미국 카네기홀에서 전세계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을 당시 뉴욕에서 공부하던 김씨도 참여하게 됐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3남 조현상 효성 부사장의 부인인 김씨는 음악으로 세계인과 소통하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문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대비책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전환형 복합불황' 시대에 과거의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대응책을 들이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한 때 가장 성공한 나라로 꼽혔던 일본이 바로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2년 10월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가 118페이지짜리 장문의 보고서를 발간, 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 일본형 장기 복합불황으로 가나'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일본이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만성적 저성장과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상징되는 20여년을 보낸 것과 비슷한 전철을 한국이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홍성국 KDB대우증권 부사장은 당시의 고민을 심화시켜 새 저서 '세계가 일본된다'(메디치)를 발간했다. 그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거쳐온 '전환형 복합불황'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서도 "제대로만 대비한다면 그로 인한 고통과 충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홍 부사장은 "한국은
1974년 1월7일. 유신헌법에 대해 문인 60명이 개헌 청원을 발의했다. 다음날 경찰들이 들이닥쳐 '문인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잇따라 문인들을 구속했다. 이에 문인들이 긴급조치 하에서 "침묵해선 안되겠다"며 나섰다. '유신 시위', '표현의 자유' 이 두 가지 강령을 앞세워 출발한 협의회가 그해 11월18일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다.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국작가회의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후신이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65돚사진)은 정권에 탄압받던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위해 협의회 창간멤버로 참여했다. "당시엔 또렷한 정치활동의 목적이 있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작가회의는 대중 문인조직으로 색깔이 바뀌었어요.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어받자는 정신은 있지만 현재 강령으로 채택되지는 않아요. 그만큼 자유롭게 문인들의 활동이 보장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현재 한국작가회의에 참여하는 회원은 지회까지 모두 3000명. 작가회의는 이 중 회원 100
"법인들에 제대로 된 '주민등록번호'를 주고 '생로병사'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일입니다." 김정민 한국예탁결제원 정보운영부 LEI(법인식별기호·Legal Entity Identifier) 사업추진반 팀장은 LEI사업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고유번호를 기업에 붙여주고 기업 설립에서부터 각종 거래, 인수·합병(M&A) 정보, 지배구조까지 투명하고 효율적이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22일 말했다. LEI는 기업정보의 효율적인 관리 및 활용을 위한 '첫 단추'로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전세계 법인에 부여하는 표준화된 ID다. 전 세계적으로 LEI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금융거래시 기업명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기해 한 기업의 금융 거래내역 및 신용 익스포저 등 총체적인 리스크 파악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 해소하고자 LEI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국제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김 팀장은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간 불거진 기업 위기 때마다 그룹의 지배구조
아직까지 한국말이 서툰,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40대 중년 아저씨가 정서적 괴리감이 느껴지는 청소년들과 어떤 교감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침 4년만에 나온 그의 새 음반 '거울'을 들었다.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12곡을 훑다가 귀에 박히는 가사들 앞에서 멈췄다. 슬쩍 지나쳐버릴 법도 하지만, 진실한 위로와 희망, 자유가 어우러진 가사들이 귓가에 진하게 울렸다. '시간이 버린듯한 거리에서 난/갈곳을 잃은 채 방황하지만/어딘가 기다리는 니가 있잖아/너라는 햇살 내 맘 비춰줄테니~'('Good thing'중에서) '~for you 꿀맛 같은 삶의 자유 놀든 말든 너의 자유/먹고 싶던 걸 갖고 싶던 걸 질러버려 그냥 오늘만큼은/for you 평생 잊지 못할 하루 만들어봐 그런 하루/과거도 미래도 걱정 좀 마시고 지금 맛있게 살아~'('나만의 길' 중에서) 한번쯤 겪을지도 모를 거리의 방황, 또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자유로운 삶. '솔(S
삐삐(무선호출기)와 시티폰(발신전용 휴대전화)이 대세이던 1990년대 초에 통신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중견 통신기업이 있다. 대우통신이 모태인 머큐리를 인수해 최근 상장 작업을 시작한 알뜰폰 사업자 아이즈비전이다. 이통형 아이즈비전 회장은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격변기를 걸어온 인물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이동통신의 약자인 '이통'이 제 이름 첫 두 글자"라며 "통신사업은 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아이즈비전은 2010년 이동통신재판매(MVNO)법이 통과된 이듬해 SK텔레콤과 손을 잡고 알뜰폰 사업을 시작한 1호 기업이다. 이 회장은 업계에서 쌓은 신뢰와 인맥을 바탕으로 지난 8월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2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아이즈비전은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소사업자지만 가입자수가 33만명이 넘는다. 1978년에 LG전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 회장은 15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마치고 1993년에 부산의 중소기업인 부일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