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평등'과 '공평'의 차이

[기자수첩]'평등'과 '공평'의 차이

심재현 기자
2008.11.25 10:21

해저 2700미터. 빛이 도달하지 않는 깊이다. 평균 수온은 0~2℃. 생물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쉴 새 없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해저 분화구가 있다. 뿜어져 나오는 물의 온도는 최고 400℃. 고온의 물과 함께 독성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한줄기 빛 없이 독성물질에 의존해 사는 이 곳 생물의 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엔 비슷한 수심의 다른 곳보다 최소 1만5000배 많은 생물이 산다. 지구가 자신의 상처를 통해 뿜어내는 온기 덕이다. 수많은 바다 속 생명이 분화구의 온기에 기대 오롯이 바다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바다 위 대한민국에는 수십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산다. 세상이 스스로 출혈하며 안마사라는 직업을 포기해 온 덕에 이들은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삶에 감사하며 하루를 난다. 사람들은 단지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이들을 냉대하며 독기를 뿜었지만 한편에선 따스함을 전해 왔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 뒤 열흘 만에 헌법소원이 다시 청구됐다.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독점이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데 인격권과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침해가 추가됐다. 헌법소원을 낸 이들은 다음 달 서울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장애는 불가능함이 아닌 불편함일 뿐이라고들 한다. "안마사를 하고 싶다"는 비장애인은 이 말과 헌재 판결을 두고 한 입으로 두 말 한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힘없는 자의 '설 곳'이 지켜질 때 좀 더 나은 사람의 자리는 저절로 마련된다. '평등'을 내세우며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자는 걸 '공평'이라 하긴 어렵다.

올 연말은 1년 내내 계속된 경기불황 한파로 예년보다 한층 더 추운 겨울이 될 전망이다. 하늘의 온기가 닿지 않는 저 아래 바다 속에서 지구는 자신의 몸을 쪼개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 우린 그 곳에 발 딛고 있으면서 언제쯤 그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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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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