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 유산을 덜 받았다며 아버지와 의절했던 둘째 삼촌이 회한의 눈물을 머금은 채 영정 앞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오빠들 대학 보내느라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막내 고모도 평소 품었던 독기를 거두고 연신 콧물을 훔쳐내기 바쁘다. 어느 날 아버지 손을 잡고 나타났던 배다른 동생 순이는 가출한 지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의 장례식은 비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용서와 화해의 장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사연 없는 집안 없다. 일상은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장례식 공간만큼은 그 비루함을 덮고도 남을 무언가가 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 임권택 감독의 '축제'는 이런 한국의 장례 정서를 잘 보여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썼다. 용서와 화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말이다.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을 법한 유서에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기니 국민들의 슬픔은 배가됐다. 덕수궁 앞 임시 분향소에 수 킬로미터 조문행렬이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도 이런 고인의 뜻이 국민들에 절절히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지난 주말 취재차 덕수궁 분향소 앞에서 만난 조문객들은 참 착했다. 초여름 날씨에 지하철 역사 안은 찜통처럼 더웠음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물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조문 행렬 중에는 '노사모' 회원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평소 노 전 대통령을 곱지 않게 봐 왔다"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가셨겠느냐"고 고인의 아픔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진정 바랐던 것은 이런 이해심이 아니었을까. 고인의 영정을 보며 '이런 착한 국민들과 동고동락 하셨으니 가시는 길 그리 외롭지만은 않겠다'는 넋두리를 전했다.
중국의 여류 소설가 다이 허우잉은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저마다의 진실'을 얘기했다. 봉하마을에서 조문을 막은 이들에게도 진실이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그들의 진실이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키는 진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진실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온다. 그러나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다. 이번 국상이 갈등과 반목, 오해를 푸는 계기가 돼야 충격에 이골이 난 국민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