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지평지성 김상준 변호사

"기업 인수합병(M&A)은 소송과 달라 완승이란 없으며 완승이어서도 안 됩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나도 이익을 취하되, 상대방에게도 적절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M&A의 기술이자 묘미입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김상준(44·사진) M&A 전문 변호사는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고 '윈윈'(win-win)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M&A가 훨씬 순조롭게 이뤄진다고 조언했다. 충돌의 지점에서 양쪽의 이익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투자자가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과도한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로 M&A를 밀어붙인다면 딜은 깨지기 마련이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의 주장을 무조건 관철시키려고만 든다면 딜은 성사될 수 없다"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수준을 찾아나가려는 마인드로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은 법률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제과의 비비카 인수 '윈윈게임'
롯데제과의 베트남 제과업체 비비카(Bibica) 인수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내 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례로 꼽힌다. 이는 국내 최초의 베트남 상장회사 M&A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양국 기업간 입장차를 좁히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김 변호사였다.
베트남 2위의 제과업체인 비비카는 현대화된 시설 투자를 원했고 롯데제과는 동남아 진출의 거점으로 베트남을 택했다. 하지만 비비카의 경영진과 주주들은 롯데제과의 하청업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다.
김 변호사는 당시 비비카 측에 지분율과 이사수 등의 현안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호치민시티를 7차례나 방문했다. 결국 롯데제과는 비비카가 발행한 신주를 인수하면서 경영권까지 가져오게 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게 됐다. 또 베트남 상장회사 M&A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한 첫 사례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김 변호사는 "당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던 비비카 경영진이 딜 이후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와 뿌듯했다"며 "M&A 협상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와 진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비비카는 베트남 최고 제과업체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고 롯데제과는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니 그야말로 윈윈게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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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주 동시인수 길 열어
김 변호사에게 M&A란 기업이 원하는 바가 계약서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협상의 묘(妙)를 살려내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M&A는 창조적 작업이라고도 불린다. 2008년 무림페이퍼의 동해펄프 M&A는 회생기업의 신주와 구주를 동시에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변호사는 당시 무림페이퍼, 동양종합금융증권, 대구은행 등으로 구성된 무림페이퍼 컨소시엄을 통해 동해펄프가 발행한 신주를 인수하면서 기존 주식도 인수하는 새로운 M&A 유형을 고안해냈다. 이를 계기로 회생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공개매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신·구주 인수 방법의 틀이 갖춰져 지금은 M&A의 한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M&A 협상에서 일방통행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는 김 변호사가 의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외국계 투자자의 외자유치 사건을 마무리하고 의뢰인에게 청구서를 보낸 어느 날의 기억을 기분 좋게 털어놨다.
"M&A 자문을 제공한 업체의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대뜸 '청구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깜짝 놀랐죠. 그런데 그 임원은 웃으며 '수고에 비해 청구액이 적다고 생각해 보너스를 주고싶다'고 전해왔습니다. 자문료를 충분히 받으면 더 말할 것 없지만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사회적 책임 잊지 않아야 성숙한 전문가"
김 변호사는 애초 법률구조 제도에 관심을 뒀다. 대학원 재학 시절 법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경제력의 불균등이 법적 지원의 불균등으로 직결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과거에 비해 변호사의 수가 늘어났지만 법률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넓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견해다.

"과거 법률가의 공익활동이란 주로 인권 피해자나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송을 무료로 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문 업무를 주로 하게 되면서 '사익'(私益)만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을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평지성이 지난해부터 사회적 기업에 제공하는 법률지원은 김 변호사의 주도로 이뤄졌다. 올해에는 사회적 기업들과 변호사를 일대일로 연결해 설립 계약, 노사관계, 인허가를 자문하고 분쟁을 대리하는 등 보다 근거리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평지성은 '공익과 기업'이라는 내부세미나를 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변호사들의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의 설립멤버로서 지평지성을 대형 로펌으로 성장시키면서도, 회사의 수익을 내는 데만 치우쳐 사회 환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는 김 변호사다. 그는 "변호사와 로펌이 수익창출에만 혈안이 된다면 사회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다"며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변호사가 성숙한 전문가"라고 말했다.
◇"도전과 실험 두려워말라"
법조계의 '고수'답게 김 변호사가 인상깊게 읽었던 책은 '아웃라이어'(outlier)였다.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 곧 10년 동안의 노력을 축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김 변호사는 성공이란 재능보다는 오랜 노력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전문성과 공익성, 수익성이 균형을 이룬 로펌을 만들자'는 뜻을 나눈 동료들과 지평을 설립하는 '특별한 기회'를 만난 지 올해로 10년째다. 이후 그는 자문 업무의 꽃인 M&A팀을 이끌며 변호사 12명이었던 지평을 10배 규모의 로펌으로 성장시켰다. 지평지성에는 도전과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소신과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평지성이 한국 로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것처럼, 다양한 변호사와 다양한 로펌에 의한 우리 법조계의 변화가 계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