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스마트연구회 7차 회의]시간 관리편
대기업 10년 차인 김 과장은 오늘도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오늘 중 처리해야할 업무리스트만 얼핏 꼽아 열 가지가 넘는 것 같다. 눈코 뜰새 없이 일을 해도 다 처리할까 말까다.
그러나 사무실에 앉자마자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밀려드는 전화와 메일, 각종 회의에 불려 다니다 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 오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갑자기 떨어진 부서장의 업무 지시까지 처리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다 돼 버렸다. 정작 오늘 해야할 일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고 만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이 단기간에 세계 15위의 경제를 일궈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하지만 이뤄낸 성과만큼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바쁘다. 시간을 여유있게 활용하기 보다 각종 업무에 치여 시간에 쫓겨 다니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스마트한' 일처리도 기대하기 힘들다.
머니투데이와 삼성경제연구소가 함께하는 워크스마트 연구회가 지난달 27일 삼성생명 서초사옥 5층 회의실에서 7차 모임을 갖고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잡무가 아닌 핵심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근로자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3분도 벅찬 업무 몰입= 미국의 노동학자인 글로리아 마크가 한 소프트웨어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직원이 문서를 읽다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고, 상사의 부름을 받는 등 잡무 때문에 업무를 방해받는 횟수가 1시간에 20번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3분 이상 어떤 일에 몰두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
인사 전문가들은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사나 경영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부분의 상사들이 직원들이 ‘더 빨리, 더 많은 업무’를 해내기를 바라지만 직원들의 업무 리듬을 배려해 하나씩 지시하는 것이 업무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의 업무에 집중하게 되면 업무에 ‘가속도’가 붙고 결과적으로 동일한 시간에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무 집중 시간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유통업체인 홈플러스의 인사부문은 '회의는 무조건 오후에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트라이엄프 인터내셔널 재팬은 아예 전직원을 대상으로 매일 낮 12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전화, 복사, 잡담을 일체 하지 않는 업무전념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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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을 강제적으로 제한해 동일한 시간에 집중력을 높이는 회사도 있다. 미라이 공업사는 퇴근 시간을 오후 4시45분(8시 30분 출근, 총 7시간 15분)으로 정하고 잔업을 무조건 금지시켰고, 트라이엄프 인터내셔널 재팬은 오후 6시30분 이후에 잔업하는 사람에게 2만엔의 벌금을 물게 하고 있다.
예측이나 통제가 불가능한 일정을 사전에 예측 가능하도록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직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일중 하나인 상사 보고가 대표적이다. 상사나 경영진이 ‘보고 시간’만 사전에 알려 주어도 직원들은 시간에 대한 통제감을 가질 수 있고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과 삶은 갈등 관계 아닌 통합 대상= 전재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서는 '일과 삶'을 균형이나 갈등이 아닌 통합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전 교수는 "시간적 물질적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 갈등이 일어난다"며 "일과 삶은 상호배타적 반대급부가 아니라 조화되고 통합돼 전체적인 삶속에 융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일과 삶을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안 중 하나로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유연근무제를 들었다. 유연근무제는 획일화된 근무형태를 개인별·업무별·기업별 특성에 맞게 다양화해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회사가 규정한 시간 범위 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율출퇴근제 △자택 등 회사가 아닌 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재택근무제 △총 근무시간을 정해놓고 일별 근무시간을 늘려 출근일수를 줄이는 집중근무제 △풀타임 복귀를 전제로 1주일에 40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파트타임제 등이 있다.
IBM, 베스트바이, 파나소닉 등 많은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IBM은 자율출퇴근제, 집중근무제, 파트타임제, 재택근무제, 직무공유제, 장기휴가제 등 6가지 유연근무제를 직원들이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체인인 베스트바이는 업무 처리 시간과 장소 개념을 철저히 파괴한 혁신적인 유연근무제인 ROWE(Result-Only Work Environment) 프로그램을 도입해 직원 만족도와 생산성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일본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 사장은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위해 직접 재택근무를 실천해 사내 통신망에 감상문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탄력근무제 등의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시간을 근로자들에게 돌려주자"=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과 노동의 분업이 이뤄지면서 경영자가 정한 시간에 업무를 시작하고 끝내는 '근로시계'에 따라 일하는 ‘제1의 근로시간 혁신'이 시작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일의 본질이 다시 한번 변화하면서 '제 2의 근로 혁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화, 기계화가 급진전되면서 투입되는 노동의 양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되는 단순한 업무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다수의 사람들은 매우 복잡하고 완결적인 업무들을 맡게 됐다. 무조건적인 투입보다 일에 깊게 몰입해 창의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간 관리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유연근무제는 개인의 생체 리듬에 맞춰 일을 하게 해준다는 점과 시간의 통제권을 근로자에게 다시 돌려줌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진현 수석연구원은 "삶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느낌은 우울, 좌절, 무기력감과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며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 일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지고 이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경영층의 신념이 중요=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노조에서 반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계형 야근 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생산성 위주로 업무 관리가 이뤄질 경우 현실적으로 초과근무수당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근무시간보다는 업무결과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는 합리적 문화 조성, 현장관리자가 제도의 취지에 맞게 직원을 관리하고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 교육 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연근무제가 직원 만족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도 직결된다는 경영층의 신념도 중요하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상사 눈도장을 찍는 대신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롤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초기에 일부 반발이 있더라도 조직의 체질이 개선될 때까지 추진하는 적극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