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학생 4명의 자살에 이어 교수까지 총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학교의 전과목 100% 영어 강의에 대해 재직 교수들이 논쟁중이다.
교수들은 대부분 영어 강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전과목 영어 강의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9일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한상근 교수의 발언을 시작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에선 카이스트 교수들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상근 교수 "모든 강의 한국어로 할 것"
9일 한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앞으로 모든 강의를 우리말로 하겠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영어 강의는 교수와 학생 간 인간적 접촉을 단절시키고, 학생들의 정서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는 이유를 들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영어 강의는 각 교수들의 선택에 맡기되, 졸업을 위해선 일정 학점 이상의 영어 강의를 수강하도록 하는 졸업요건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한 교수의 입장 표명에 따라 동료 교수들의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고통 줘선 안 돼"
10일 새벽 카이스트의 실명이 밝혀지지 않은 한 교수는 카이스트 학내 커뮤니티에 "한상근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며, 전과목 영어 강의 의무화에 동의하지 않는 2가지 이유를 밝힌다"고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올해 첫 번째로 자살한 조모씨(19)와 네 번째 자살 학생 박모씨(19)를 지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과학대표 대학인 카이스트가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한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밝혔다. "고등 학문을 자국어로 배우지 못하고 외국어로 사유한다면 미개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며 "물론 영어의 국제 공용어 역할을 고려해, 전과목 영어 강의가 아닌 선택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수학과 영어능력은 단기간 속성으로 키울 수 없고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고통을 줘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일정 수준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과목 영어 강의는 '체계적인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며 "전공 실력을 탄탄하게 갖춘 뒤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게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문수복 교수 "영어강의 소통으로 풀어나가야할 문제"
이날 카이스트 전산학과 문수복 교수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영어 강의에 부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2004년 카이스트에 부임한 문 교수는 8년 간 전 과목을 영어로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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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는 국제화에 따라 영어 강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과목 영어 강의를 통한 득과 실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며 "결국은 학생과 교수, 학교 간 소통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그는 "학부 과목에선 영어 때문에 강의 내용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며 "그렇지만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로 세계 경쟁에 뛰어들려면 연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 토익(TOEIC) 900점 이상은 갖출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카이스트는 11일과 12일 수업을 일시 중단하고, 학과별로 교수와 학생 간 대화를 통해 잇단 자살의 원인과 대책을 모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