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센스와 개코, 그리고 국정원 국정조사

[기자수첩] 이센스와 개코, 그리고 국정원 국정조사

황보람 기자
2013.08.27 06:22

"사람 좋은 듯이 위선 떨어 대지마. 너넨 너희들 스스로에게도 비즈니스맨. 그건 네 안의 소리에 대한 디스리스펙트."

래퍼 '이센스'가 소속사에 계약 해지 당하면서 맺힌 한을 '디스랩'으로 풀었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준말로 '깎아내린다'는 뜻이다. '신뢰'나 '존중'의 반댓말이다. 이센스는 한때 롤모델로 삼았던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를 겨냥했다. 비즈니스맨으로 전락해 후배의 리스펙트를 잃었다는 것.

하루만에 개코는 '맞디스랩'을 만든다. "용감함과 멍청함 이제 구분해라...너의 냉소와 염세 때문에 지쳐있는 내 주변인들의 기분 때문에 한다고 인마". 개코는 가사에서 '계약 해지' 사유가 이센스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나는 왕, 너는 관심병 환자"라며 '클래스'가 다르다고 엄포를 놨다. 이 랩으로 개코는 무너진 '리스펙트'를 회복했다.

한국 힙합신에 격렬한 '디스전'이 계속되고 있다. 위부터 왼쪽 차례대로 스윙스, 쌈디, 이센스, 다이나믹듀오./스타뉴스
한국 힙합신에 격렬한 '디스전'이 계속되고 있다. 위부터 왼쪽 차례대로 스윙스, 쌈디, 이센스, 다이나믹듀오./스타뉴스

래퍼들의 디스전쟁은 일종의 청문회다. 디스된 래퍼(증인)는 비판에 맞디스(증언)해야 한다. 한층 더 강화된 논리로 랩을 짜야 성공이다. 디스전쟁에 참여한 래퍼들은 하룻밤 사이 디스에 디스를 거듭하며 능력을 입증했다. 각기 입장은 달랐지만 팬들의 리스펙트를 회복하기에 충분했다.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관련 국정조사를 디스전쟁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주요 증인들은 '선서거부'로 자신의 신뢰성을 셀프디스하며 입을 열었다.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공권력'의 낮은 클래스만 새삼 확인했다. 두달 넘게 끌어온 사안이었지만 적절한 논리는 없었다. 공권력의 리스펙트는 심히 손상됐다.

국정원이 해명에 실패하니 촛불은 더 강해진다. 국정원 규탄 촛불은 비정규직 등 민생 문제와 결합해 진화하는 추세다. 다음달 14일에는 추석 민심을 관통하는 범국민촛불까지 예고됐다. 성난 민심의 촛불을 들불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끝이기를 바랐던 국정조사는 새로운 시작을 불렀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원 국정조사가 진상규명에 얼마나 충실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9.9%가 '불충실했다'고 답했다. 국정원 특별검사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4.7%에 달했다. 국정원 시국회의는 준비한대로 '특검 촉구 100만 서명'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리스펙트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뿐이다. 신뢰를 잃은 국가는 잘 작동하기 어렵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없어 보이는 세제 개편안 등 '민생 정책'이 삐걱거리는 이유다. 야권은 아예 국회 밖에 텐트를 쳤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26일 비로소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박 대통령의 '클래스'만이 소모전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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