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더 테러 라이브'와 경찰불신

[기자수첩]'더 테러 라이브'와 경찰불신

정영일 기자
2013.08.30 06:22

얼마 전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봤다.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테러범과 그와의 인터뷰를 독점으로 생중계하려는 방송 앵커의 복잡한 심리전을 속도감 있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가 눈길을 끄는 것은 철저하게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깔고 전개된다는 점이다. 특히 구석에 몰린 정부의 비열한 측면을 대표하는 인물로 경찰청장이 등장한다는 점이 경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로서는 흥미로웠다.

영화 속 경찰청장은 생방송에 출연해 테러범의 신상을 공개하며 압박한다.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고 자수하라'는 식이다. 테러범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는 고려대상도 아니다. 결국 경찰청장은 테러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지난 7월말 개봉한 이 영화는 28일 현재 누적 관객수 547만3100명을 기록하고 있다. 20세 이상 성인(3675만5300명, 2010년 통계청) 6.7명당 1명이 봤다. 경찰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영화를 왜 이리도 많이 본 것일까.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난 27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한 발언이 주목받았다. 그는 최후변론을 통해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청장으로서 질서를 유지하고자 충정에서 한 말"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후 변론이 또 다시 조롱거리가 된 것은 그가 기소된 이유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일선 기동대상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가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전 정권의 최고 정치 지도자를, 그것도 운명을 달리한 지도자를 특정 정치세력을 대신해 앞장서 물어뜯은 그가 '충정' 운운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13만 경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장본인의 입에서 듣기는 아까운 단어다.

경찰 수뇌부들이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축소수사 의혹'으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청장도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비리로 사법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다. 15대 청장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로 구속돼 3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아직까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퇴임 후 한화그룹 상임고문으로 영입된 11대 최기문 청장도 2007년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무마하려다 형사처벌의 대상이 됐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제대로 된 경찰 수뇌부를 갖지 못한 것은 국민에게도, 경찰에게도 불행일 수 밖에 없다.

오늘도 13만 일선 경찰들은 박봉에 어려운 근무환경에도 시민안전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애쓰고 있다. 경찰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찰 수뇌부의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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