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과서 '관동대학살' 왜곡…"억지 주장"

日 교과서 '관동대학살' 왜곡…"억지 주장"

이슈팀 정선 기자
2013.08.31 10:02
관동대학살/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관동대학살/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본 요코하마시 교육당국이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군인과 경찰, 자경단이 저지른 조선인 등 학살사건인 '관동대학살'과 관련해 교과서 기술을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간토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해 1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일본 정국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를 색출해 학살한 사건이다.

NHK는 관동대지진 발생 지역 중 하나인 요코하마시의 교육위원회가 중학생용 부교재인 '요코하마 알기' 2013년 판에서 '군대나 경찰 등이 조선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하고 중국인을 살상했다'는 기존 판 내용 가운데 '군대와 경찰이 관여했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학살'이라는 단어를 '살해'로 바꿨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요코하마 교육위원회는 일부 시의원이 "아이들의 역사 인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교과서 내용을 이같이 수정했고 기존에 배포된 부교재는 전부 회수했다.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중학생의 심신 발달 정도를 고려해 '학살'이라는 표현을 없앴다"며 "군대나 경찰이 학살에 관여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원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9일 일본 군대나 경찰이 학살에 관여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음은 이 연구위원과의 일문일답

- 일본 교육당국은 군대나 경찰이 학살에 관여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교과서를 수정했다고 주장하는데

▶ 관동대학살이 군대·경찰이 주도하고 자경단이 가담한 사건이라는 것은 강득상 교수, 야마다 쇼우지 교수 등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이미 입증됐다. 당시 피해 학살자 수는 6661명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발견된 1924년 3월 독일 외무성의 사료에 의하면 이보다 약 3배 이상 많은 2만3059명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도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 왜 일본은 군대·경찰을 동원해 그렇게 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나?

▶ 1919년 3·1운동 당시 일본군들은 조선인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학살했지만 조선인들 기세에 놀랐다. 또 청산리 대첩의 패배로 일본의 긴장감은 더 높아졌다. 더불어 1923년 일본 내에서는 민주화 운동인 '대정(大正) 데모크라시'가 절정을 치닫던 시기였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일본 지배계층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 계엄령 선포, 국민 성향 등을 볼 때 단순히 유언비어가 떠돌아서 자발적·우발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해 학살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 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 우리 측에서는 어떤 대응 방안이 필요한가?

▶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를 보면 우리는 항상 피해자 입장에서 호소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일본이 증거가 없다고 잡아떼면 어려움을 겪어왔다. 피해자 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왜 일본이 이런 짓을 자행했는지 당시 일본 사회의 구조·제도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관련 학자들이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회의 기록, 각료들의 개인 일기와 편지 등을 조사·발굴해 일본 정부가 학살에 개입했다는 증거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비하면 연구 기간도 짧고, 축적된 자료도 적다.

- 오는 9월 1일은 관동대학살 90주기다. 그런데 요즘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가 그칠 줄 모르고 있는데

▶ 관동대학살을 비롯한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에 대해 국가와 국민이 냄비근성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 역사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계속 고쳐지기에 관심과 노력을 멈추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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