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위험 확률 몇 %면 불안하지 않나 봤더니…

# 23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은행 지점.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으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억건 이상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개인 신용정보 유출 대란 속에 고객센터 전화나 인터넷 홈페이지 모두 연결이 원활하지 않자 직접 지점으로 찾아온 고객들이다.
하지만 이 은행 지점의 대응은 좀 독특했다. 고객이 창구 앞에 앉을 때마다 직원들은 "비밀번호와 CVC(카드 뒷면의 세자리 숫자)는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카드를 재발급하실 필요가 없다"며 돌려보내려 했다.
한 40대 여성이 "그건 알지만, 그래도 불안하니까 카드를 바꾸고 싶다"고 하자 이번엔 지점장이 직접 나서 "지금 유출된 정보로는 카드 복제나 부정사용이 불가능하니까 전혀 걱정하실 필요없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지점장은 "돌아가서 주변분들께도 알려주세요. 문제 없으니까 신용카드 재발급 안 하셔도 된다구요"라고까지 당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용정보 유출 사태 이후 지난 25일까지 KB국민·롯데·NH농협 3개 카드사의 카드 해지 및 재발급 신청 건수는 450만건을 넘었다. 이밖에도 적지 않은 카드 고객들이 자신의 비밀번호를 바꿨다.
실제로 사건을 수사한 창원지검은 비밀번호와 CVC는 유출되지 않았으며 다른 개인정보들 역시 유통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카드 고객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비밀번호는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상의 생일 등 다른 개인 정보를 토대로 유추가 가능하고 CVC는 단 세자리 숫자의 조합일 뿐이라는 점 등 때문이다. 또 이번 사건에서는 유출되지 않았더라도 기존에 이미 비밀번호나 CVC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등도 불안감의 이유다.
그러나 이는 확률 자체만 놓고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카드사들은 카드 복제나 부정사용으로 인한 피해는 전액 보상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이 작은 위험에도 불안해하며 마음을 졸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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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말하는 '제로 리스크 편향'(Zero-risk bias)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러시안룰렛'을 예로 들어보자. 권총의 탄창에는 최대 여섯발의 총알을 장전할 수 있고, 당신은 2차례의 게임에서 한번씩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가정하자.
각각의 게임에는 돈을 내고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는 한번씩의 기회가 있다. 첫번째 게임에서는 6개의 탄창 가운데 4곳에 총알이 들어있고, 당신은 돈을 내고 그 가운데 2개를 제거할 수 있다. 두번째 게임에서는 총알이 단 한개 들어있고, 당신은 대가를 지불하고 그 한개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기회를 사기 위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 게임 전에 미리 결정해야 한다.
첫번째 게임의 기회는 생존확률을 33.3%에서 66.7%로 33%포인트 이상 높인다. 두번째 게임의 기회는 생존확률을 83.3%에서 100%로 17%포인트 정도 높인다.
생존확률을 높이는 효과만 놓고 보면 첫번째 기회에 더 많이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대부부의 사람들은 두번째 기회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답한다. 죽을 확률을 아예 0%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제로 리스크 편향'이다.
심리학자들이 전기자극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유독성 화학 물질에 대해 보이는 뇌파의 반응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경우 위험의 확률이 99%일 때와 1%일 때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차이는 확률이 0%로 떨어져야만 나타났다.
발생 확률이 0%가 아니라면 확률이 지극히 낮든 높든 사람들은 똑같이 불안해한다. 이것이 카드사들이 고객으로 삼고 있는 '사람'의 심리다. 무조건 "걱정할 필요없다"며 돌려보내는 것보다 고객의 심리부터 살피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