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T 막고 '언딘' 투입한 해경… 곳곳에 '부적절' 투성이

UDT 막고 '언딘' 투입한 해경… 곳곳에 '부적절' 투성이

진도(전남)=박소연 김유진 기자
2014.04.30 16:45

[세월호 참사]"수색 주도권 갈등"… 대책본부는 언론 대응만 열중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 수색작업을 위해 정박한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의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오후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은 잠시 중단됐다. 2014.4.26/사진=뉴스1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 수색작업을 위해 정박한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의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오후 조류가 빨라져 구조작업은 잠시 중단됐다. 2014.4.26/사진=뉴스1

여객선 세월호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해경이 실종자 구조에 결정적인 시기였던 16~17일 부적절한 구조 행태로 일관해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사고 초기 수중구조 작업의 전문가인 해군 UDT(특수전전단)나 SSU(해난구조대)의 투입을 막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는 세월호 선수선저가 수면 위로 드러나 있던 때라 '에어포켓'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시점이다.

아울러 사고 직후에도 적극적으로 선내 수색을 실시하지 않았던 점이나 가이드라인의 설치가 늦었던 점, 바지선이 아니라 크레인을 우선적으로 동원했던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해군 투입 '멈춰라'…'언딘' 먼저

국회 국방위원회 진성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아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군은 사고 이튿날인 17일 정조시간이었던 오전 7시쯤 UDT와 SSU 소속 잠수사 19명의 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군은 그러나 이들을 현장에서 대기만 시켰을 뿐 실제 잠수에 투입하지는 않고 15시간 가까이 대기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잠수에 투입된 것은 이날 밤 10시28분쯤이다. 그러나 강한 조류로 인해 선체 탐색은 불가능했다.

/사진=진성준 의원실
/사진=진성준 의원실

국방부는 자료를 통해 "민간업체(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해 잠수를 실시하지 못했다"며 "군은 상호 간섭 배제를 위해 해경의 통제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해군 UDT와 SSU는 사고가 발생한 16일 정오를 전후해 헬기와 해군함정을 이용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SSU는 이날 오후 6시쯤부터 35분간 잠수를 실시한 후 이후 별다른 수색작업을 전개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국방부는 자료에서 "탐색구조를 주도하고 있는 해경에서 잠수작업 통제로 해경 잠수팀이 우선 입수했다"며 "군이 설치한 하잠색(잠수용 유도줄)을 이용, 해경팀이 입수했다"고 말했다.

◇'언플'에만 열중…"보여주기식 성과에 치중 의혹"

해경은 이같은 상황에서 '언론 플레이'에만 열중했다. 해경이 주축이 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지난 19일 수색상황 브리핑에서 세월호 선체 내에서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며 이는 민간 구난단체인 언딘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당시 "언딘은 군·경보다 수중 선체수색, 조난구조를 전문적으로 하기 때문에 더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신을 처음 확인한 것은 언딘이 아닌 자원봉사 민간 잠수사라는 보도가 나오고서야 대책본부는 발표를 정정했다.

민간 잠수부들 사이에서는 해경의 이같은 태도가 해경이 수색작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민간잠수사는 "수색작업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 방문(17일)을 앞두고 해경이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해경은 잠수인원 부풀리기로 비판받기도 했다. 해경은 지난 20일 상황브리핑에서 잠수부 563명을 동원해 선체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현장에서 확인한 실제 잠수인원은 십수명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대책본부는 당시 "잠수를 돕거나 대기하는 인원까지 모두 포함시켜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대책본부가 발표하는 하루 잠수인력을 100명 내외로 줄어드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고 초기, 적극적 선내수색 왜 없었나

사고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이 선내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탈출할 것을 유도하지 않은 점도 미흡한 초동대처의 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경은 사고 당일인 16일 9시35분 사고해역에 도착했지만 기관실 선원들이 모여 있던 선미와 선박직 선원들이 모여 있던 선수 조타실에 고무보트를 대고 선원들을 구조했다. 이후 조타실 아래의 유리창을 깨고 선내의 승객을 탈출시켰다.

목포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은 "세월호 선내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경사가 심해서 밀려나왔다"며 "세월호에 비해 선체가 작아 계류를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한명이라도 빨리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해경 측은 이에 대해 "해경 123정은 본선과 함께 본선에서 내린 구조보트를 각각 여객선에 붙이고 80명(1명 사망)을 구조했고 같은 시각부터 순차적으로 도착한 해경헬기 3대는 35명을 구조하여 해경은 총 115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왔다 그냥 돌아간 크레인, "바지선은 부르지도 않고…"

사고 직후 수색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가이드라인 설치를 하지 않은 것도 사고 초기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중수색의 경우 시계가 20~30cm에 불과하고 조류도 센 만큼 제대로 된 수색을 위해서는 가이드라인 설치가 우선적이라는 것이 잠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한 민간잠수사는 "사고 초기인 16~17일은 비교적 조류도 약하고 시계도 양호했다"며 "가이드라인이 17일에야 설치가 됐는데 그 이전에 들어갔던 것은 제대로 된 수색이 아니라 사실상 우왕좌왕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해경은 민간 크레인을 요청했는데 이 역시 인양에나 필요한 크레인을 불필요하게 동원했던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때 사고 해역에 4척이 와 있던 크레인은 1척만 남고 모두 철수한 상태다.

또 다른 민간 잠수사는 "17일 오후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바지선 등 수중수색을 실시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며 "당국에 사고 초기에 필요한 것들을 알고 있는 전문가가 없는건지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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