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 못한 운동화·짝 잃은 슬리퍼가 주인 기다리듯…

신지 못한 운동화·짝 잃은 슬리퍼가 주인 기다리듯…

진도(전남)=최동수 기자
2014.04.30 13:57

[세월호 참사]팽목항 '유류품 보관소'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 위치한 유류품 보관소/ 사진=최동수 기자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 위치한 유류품 보관소/ 사진=최동수 기자

29일 오후 3시30분. 팽목항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들었다. 항구는 피붙이를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애처로운 발걸음으로 다시 가득 찼다.

이 발걸음마저 뜸한 곳, 항구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황량한 갯벌 매립지에 녹슨 컨테이너 2동이 서 있다.

'유류품 보관소'라는 팻말이 붙은 컨테이너. 그 속엔 주인보다 먼저 도착한 물품들이 누군가 다시 찾아갈 것처럼 얌전히 놓여 있다.

컨테이너는 진도군청에서 나온 직원이 홀로 지키고 있었다. 유류품 보관소는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들이 마지막으로 보관되는 곳이다.

해경 함정이 사고 해역에서 유류품을 거둬가 목포 해양경찰서 함정부두로 옮기면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학생증이나 주민등록증 등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물품을 거른다.

주인을 찾기 힘들거나 수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물품은 다시 팽목항으로 돌려보내진다.

첫 번째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금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류품은 첫 번째 컨테이너 안에 있는 4층 선반 가운데 2층까지만 차 있었고 나머지 컨테이너 한 곳은 아직 빈 채로 있었다. 유류품들은 번호표가 붙은 약 20여개의 파란색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짝 잃은 슬리퍼부터 기름때가 묻어 상표를 확인하기 어려운 운동화, 물에 빠져 풀이 죽은 곰 인형, 컵라면, 과자봉지, 생리용품, 체육복, 여행용 목베개까지 애달픈 삶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컨테이너 뒤쪽 질퍽한 진흙 바닥에는 펴지지 않은 구명정이 검은색 그늘 막에 덮여있었다. 바로 옆 검은 천막에는 1994년 제조된 구명조끼가 널브러져 있었다.

찢어진 구명조끼 하나를 잡아당기자 다른 구명조끼들도 줄줄이 천막 밖으로 딸려 나왔다. 등받이가 날아간 의자나 반 토막난 나무판자, 찢어진 구명동의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연상케 했다.

지난 25일부터 유류품이 들어왔지만 이날까지 실종자 가족은 5명 정도만 이곳을 찾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한숨만 쉬고 얼른 발길을 돌렸다.

오후 4시10분 이날 처음으로 보관소를 찾은 한 50대 남성도 10분 동안 컨테이너를 서성거리다 나왔다. 남성은 어깨를 움츠린 채 담배 하나를 입에 물더니 쓸쓸히 되돌아갔다.

유류품 보관소를 관리하는 진도군청 관계자는 "혹시나 해서 찾아온 가족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돌아가곤 한다"며 "인양이 되면 물품이 더 많이 들어올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오후 4시20분 인양된 시신이 팽목항에 도착할 무렵, 유류품 보관소 옆 공터에는 가족들의 절규만이 울려 퍼졌다.

한편 실제 주인을 찾은 유류품이 보관되고 있다는 목포해양결찰서 함정부두 옆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에는 유류품 보관소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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