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선 광화문광장, 달라진 것은 짧아진 머리뿐

또 다시 선 광화문광장, 달라진 것은 짧아진 머리뿐

신현식 기자
2015.04.12 07:53

[세월호 1주기]유가족들의 요구는? 사고초기 72시간 진상규명 등

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희생자 배·보상 절차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희생자 배·보상 절차 중단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삭발을 한다는 것. 공기처럼 항상 늘 자리를 지켜온 머리를 끊어 내는 일. 쉽지 않다. '어제와 다르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또 다시 광화문 광장에 섰다. 최근 삭발을 한 유가족들은 머리에 노란색 두건을 썼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주장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의 결의와 당위는 광화문 광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상규명을 해야한다"고 외쳤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많은 배·보상을 받았는데 무엇을 또 달라고 하냐"다. "시행령안을 폐기해야한다""선체인양을 해야한다"고 외쳤다. 또 다시 보상 얘기가 나온다.

삭발을 결심한 단호함은 이같은 문답의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지난 1년간의 질문이 답변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답답함의 표현이다. 폐쇄적인 문답과 의도적인 무시, 답답함은 오늘도 유가족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이끌고 있다.

◇모든 것의 '빅뱅', 사고 초기 72시간

세월호 가족은 '사고 직후 72시간'의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시시각각 가족이 죽어가는 생생한 고통을 그들은 1년째 묻고 있다. 지금은 죽어버린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올 수도 있던 그 시간동안 대체 구조 현장과 지휘부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사고 이후 72시간동안 모든 국민은 국가 기관이 재난 대응에 완전히 실패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봤다. 실패한 초기대응, 실효성이 전무한 현장대응, 당사자가 납득할 수 없는 후속조치가 이어졌다.

세월호 가족들은 '세월호 72시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첫 단추로 그 시간동안의 진상규명을 가장 큰 요구사항으로 삼고 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9일 기자와 만나 "'사고'가 발생한 뒤 실종자들의 생존이 가능했던 72시간동안 구조에 실패하면서 '참사'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고를 유발시킨 청해진해운 등 선사측 책임과 사고 이후 구조에 실패한 해경 등 정부측 책임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사가 사고를 유발한 원인은 일부 밝혀진 만큼, 구조를 맡았던 해경과 정부가 대응에 실패해 참사를 초래한 원인도 밝혀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다는 논리다.

조영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을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직접 원인 △침몰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부실한 대응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 3가지로 정리했다.

이중 '침몰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부실한 대응' 부분이 세월호 가족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부실관제 △최초 신고를 접수한 해경의 부실 대응 △해경의 외부 지원 배제 의혹 등이 검찰 수사로 일부 규명됐다. 부실 구조와 관련해 김경일 해경 123정 정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당일 투입된 잠수사 수의 과장 여부 △해경이 사망자 수습과정을 왜곡하고 지연시켰는지 여부 △에어포켓은 존재했는지 여부 △해경 구조 동영상 원본 삭제 여부 △대통령 등 상급기관에 대한 적절한 보고와 지시 여부 등 유가족이 특별법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72시간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전 운영위원장은 "특별법이 제정되며 진상규명 절차가 진행 중인 줄로 아는 국민들도 계시지만 아직 시행령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해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절차는 시작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참사,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등은 핵심 요구의 실현을 위한 현실적·기술적 요구다. 이재근 세월호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해경과 정부의 잘잘못을 가려낼 특조위 사무처를 파견 공무원들이 장악한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반문하며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온전한 선체 인양은 진상규명과 실종자 수습 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절차다. 선체 내부에 있을 것으로 되는 실종자 시신을 수습하고, 사고의 가장 기본적 증거인 선체를 조사해 진상 규명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시신과 증거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체를 손상시키지 말고 온전한 형태로 인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배·보상과 책임자 처벌 등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현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전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나라 재난 대응의 현주소가 처참히 드러났고,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국민이 과반수가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다른 사고가 발생했을때 참사로 이어지지 않는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라며 "이를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객관성과 공정성, 독립성을 갖춰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조사 결과가 어떻든 납득할 수 있는 과정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상규명이 되지 않아 원인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배·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은 전시행정에 불과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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