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주나…대법원의 잇따른 '거부'

이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주나…대법원의 잇따른 '거부'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황재하 기자, 한정수 기자
2015.04.18 06:15

[서초동살롱<60>]대법원, 과거사 피해자 배상 판결 잇따라 뒤집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단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을 규탄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뉴스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단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을 규탄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뉴스1

일제 강점기부터 제6공화국까지, 약 100년간의 한국 근대사에는 많은 아픔이 존재합니다. 일본으로부터, 군인으로부터, 때로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들의 피해에 대한 조사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과거사 위원회는 5년여간의 활동기간 동안 1만1000여건의 과거 사건을 조사해 대한민국 근대사에 억울한 피해자들이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최근 연달아 과거사 피해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과 '과거사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대체 왜 대법원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을까요.

◇대구 10월사건과 긴급조치 9호

대법원 판결의 주인공 중 한명은 '대구 10월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대구 10월 사건은 1946년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미군정은 식량난이 발생하자 농촌의 쌀을 강제로 징수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구 시민들이 시위를 시작했고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시위는 무장항쟁으로 발전했고 미 군정이 계엄령을 선포해 거의 모든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습니다.

대구 10월사건의 진압과정에서 검거된 7500여명은 취조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석방된 뒤 경찰 및 우익단체에 의해 가옥과 재산을 파괴ㆍ몰수당하는 등의 보복을 당한 경우도 있고, 적법절차 없이 사살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이 시위가 조선공산당의 지령과 선동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대구폭동'이라고 불렀지만 2007년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됐습니다.

과거사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낸 것은 피해자 5명의 유족들입니다. 정모씨의 유족들은 당시 진실규명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로 정씨가 10월 사건 진압과정의 희생자로 확인이 되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한편 긴급조치 9호의 피해자는 최모씨 입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근거합니다.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 53조는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나 정치관여 행위 등을 금지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최씨는 1978년 서울대 재학생 시절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끌려가 20여일 동안 갇혀 지냈고, 이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1·2심은 승소했는데…

정씨의 유족들과 최씨는 하급심에서는 모두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정씨의 유족들이 낸 소송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고 전제했습니다. 재판부는 "대구 10월 사건은 국가적 혼란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정씨가 희생자인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17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씨에 대해서도 1심은 원고 패소 판결 했지만 2심은 "긴급조치 9호 내용이 헌법에 명백히 위반되는대도 이를 발령한 대통령과 중앙정보부 공무원들의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된다"면서 최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판결을 모두 뒤집었습니다. 정씨 사건의 경우 정씨 유족들이 과거사 조사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승소 판결이 파기됐습니다.

대법원은 "정씨 유족이 진실규명 신청도 하지 않았고 과거사 위원회에 따르면 정씨는 10월사건 관련 희생거명자로 청구자료에만 기재돼 있을 뿐 진실규명결정의 주문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정씨 유족이 국가가 소멸 시효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을 이유가 없는 만큼 국가가 이 사건에 대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최씨에 대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재판을 파기합니다.

◇"대법원 판결 이해하기 어렵다" 비판…피해자들은 어떻게 구제 받나

법리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명백히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사건에서 개개인의 피해자들이 법으로 구제받을 수 없음을 대법원이 확인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들뿐 아니라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긴급조치가 당시로서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이를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1월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 받을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려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현직 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게시판에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이고 그 중에서도 최종심인 대법원은 그 가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와 관련된 글이지만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이 경청해야 할 내용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형식적인 논리에만 갇혀 민주주의와 인권을 뒤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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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기자

2011년 입사해 사회부 법조팀, 증권부, 사회부 사건팀, 산업1부 자동차팀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제14회 한국조사보도상 수상 2024년 제 19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언론상 신문보도부문 우수상

한정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법조팀장 한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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