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조우성의 로세이] "상처받은 의뢰인에 수고·격려의 말 잊지 말아야"

최근 주요 의뢰인 리스트를 점검하면서 수임금액 상위 10위권 의뢰인들을 정리했다. 그들을 보면서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 곰곰이 따져봤는데 놀랍게도 그 중 3명은 K씨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K씨. 3년 전 회사 임원으로 있다가 해임된 그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는 관련 민사사건에서 모두 패소하자 자신이 알고 있는 회사의 비위 사실을 근거로 회사의 대표이사를 상대로 업무상 횡령과 업무상 배임 등의 형사고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검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런 결과를 들고 나를 찾아온 K씨는 상처받은 들짐승 같은 초췌하고 깡마른 모습이었다. 그는 "너무 억울합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라며 하소연했다. 나는 가능한 여러 방안을 궁리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진행할 수 있는 법적조치가 없었다. K씨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나는 그에게 "이사님께서는 할 만큼 다 했습니다. 변호사인 저도 더 잘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걸로 충분합니다. 이젠 이 일에서 해방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때로는 포기하는 것이 더 큰 용기입니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솔루션을 기대하고 온 K씨에겐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었으리라. 그런데 K씨는 내 얘기를 듣고 몇 분간 눈을 감았다 뜨더니 "같은 결론인데도 변호사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을 정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변호사님들은 무조건 방법이 없다고만 했는데. 정말 제가 할 만큼 다 한 거 맞죠"라고 말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장인이 암 투병을 할 때 가족들로서는 주위에서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보고 있었다. 양방, 한방, 민간요법, 기(氣) 치료 등. 그 때 가족들의 마음 속에는 '혹시라도 우리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안 되는데'라는 불안감이 컸다.
만약 그 때 전문가나 권위자가 "가족들로서는 더 이상 잘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편하게 해 드리십시오"라고 말해줬다면 장인의 마지막은 좀 더 편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마지막까지 여러 방책을 쓰면서 장인을 번거롭게 해드렸다는 자책감이 크다.
K씨는 나와의 상담 이후 일상으로 복귀했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해 준 다른 중견기업에 임원으로 발탁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K씨는 여러 기업체를 내게 소개해 줬고, 가장 중요한 의뢰인 가운데 1명이 됐다.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오세요. 수고하셨습니다"는 그 말이 상처받은 의뢰인에게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변호사는 반드시 승소해야 하고 의뢰인을 만족시켜줄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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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한 마음에 무익한 법적 분쟁을 계속하려는 의뢰인에게 게임 오버(game over)를 선언하는 변호사가 되자. 다만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잊지 말자.

'뚜벅이 변호사'·'로케터'로 유명한 조우성 변호사는 머스트노우 대표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운영 중이다. 베스트셀러인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이자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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