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촛불 1주년 집회, '자율·창의적 시위문화' 새로운 가능성 제시
"집회에 그냥 나오면 심심할 것 같아서요. 재밌잖아요."
로봇 가면을 쓴 20대 남성이 모형 검을 든 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10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집회 현장에서다. '자유로운 시민들의 촛불 1주년 기념축제 촛불파티'라는 명칭에 걸맞게 집회는 파티장이었다. 서방 문화인 핼러윈(10월31일) 명소 이태원에 있어야 할 인기 캐릭터 직쏘(공포영화 캐릭터)와 좀비,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여의도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핼러윈 코스튬(의상)을 차려입고 집회를 즐겼다. 젊은 연인은 삐에로 분장을 한 채 나왔고 어떤 송파구 주민들은 직쏘 의상을 단체로 맞췄다. 거대한 공룡 의상을 입은 한 시민은 놀이동산에서처럼 어린이와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집회장 인근인 국회의사당역 출구 앞에는 분홍색 고깔모자와 망토 코스튬을 걸친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을 반겼다.
집회장 주변에 다가가자 DJ가 튼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집회인지 공연장인지 헷갈렸다. '쿵쿵' 거리는 비트를 들으니 클럽 같기도 했다. 집회장에서 민중 가요를 듣는 데 익숙했던 귀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자원봉사자들은 저녁 시간 출출할 시민들에게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물과 커피, 떡도 마련됐다. 집회가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무료로 나눠줬다. 대규모 집회가 벌어지면 전자 촛불과 각종 식음료를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는 것과 다른 풍경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의료팀도 눈에 띄었다.
여의도 촛불집회는 '시민이 주인공'이라는 소개처럼 자발적이었다. 주최 측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집회를 위해 일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었다. "파티 같은 1주년 집회를 해보자"는 한 네티즌의 제안이 1만명(주최 추산)의 축제로 발전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는 방식이 풍부해졌다는 느낌이다.
이제 한국의 시위 문화는 평화적이냐, 폭력적이냐를 따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더 나아갔다. 시민들은 평화시위는 물론 날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시위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보수야당을 타깃으로 삼은 이날 여의도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시위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건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