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열다섯 번째, 대길이] 길에서 헤매던 꼬물이 세 마리, 키우던 반려견과 비슷해 마음 가서 '입양'…처음엔 말썽 피웠지만 간식과 산책으로 극복, "아프지만 말아, 건강하기만 해, 그리 늘 말해주지요"

벚꽃잎이 흩날리던 사월. 때는 2년 전이었다. 거리엔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거려 입꼬리를 일렁이게 했다. 설레는 연인들. 웃음을 머금은 가족들. 이 시간을 기다린 이들의 표정도 활짝 피었다.
봄이라고 모든 존재가 다 포근한 건 아녔다. 같은 거리엔, 겁먹은 표정으로 종종거리던 꼬물이들이 있었다. 자주 두리번거리고 쳐진 귀를 쫑긋거렸다.

하얗고 털이 복슬거리던 세 강아지가 태어났다. 엄마 품이 필요할 나이건만, 곁엔 아무도 없었다. 놀랄 일 많은 길 위에서 평온한 건, 서로의 체온뿐이었다. 조마조마한 밤마다 작은 몸들을 켜켜이 포개며 보냈다.
누군가 그 광경을 봤다. 여기 강아지들이 있어, 버려졌나봐, 등의 말을 했다. 세 꼬물이들은 다음 거처로 옮겼다. 계속 안녕할만한 곳은 아녔다. 유기견 보호소였다.
태어난지 3개월 반쯤 됐던, 버려진 강아지들은 보호소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몸이 놓여진 순간, 10일이 주어졌다. 찾아가라며 공고하는 기한이었다. 그건 잃어버렸을 때나 가능한 거였다. 버려진 강아지들에겐 죽을 날이나 다름 없었다.

꼬물이들이 철창에 해맑게 한 번, 두 번, 매달리는 동안 날짜는 속절없이 지워져갔다. 열흘이 다 되어왔다. 안락사. 그 단어를 쓰기엔 너무 어린 강아지들이었다. 이를 차마 못 본 이들이 임시 보호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름도 생겼다. 솔잎이, 풀잎이, 꽃님이. 처지와는 달리 보드랍고 고운 이름이었다. 평생을 생각하고 지었을 거였다.

그중 솔잎이는 첫번째 누나를 만났다. 2021년 5월 29일이었다. 똥꼬발랄하게 거실 바닥을 총총 뛰며 집에 처음 들어갔다. 누나 손바닥을 오물오물 물며 장난을 쳤다. 동그랗고 하얀 집도 생겼다. 신발에 코를 박고 자기도 했다. 코 박고 자는 걸 좋아라했다. 처음으로 붕붕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했다.
반년이 흘렀다. 애정으로 솔잎이도 많이 자랐다. 귀도 쫑긋해지고 꼬리도 길어지고 갈색 눈물자국도 많이 옅어졌다.
첫번째 누나가 갑작스레 해외로 가게 됐다. 속상한 이별이었다. 다행히 이어서 돌봐줄 두번째 누나를 만났다. 역시 임시보호였다.

8개월이 된 솔잎이가 두 번째 집으로 왔다. 2021년 11월 21일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로 잘 컸다. 첫 번째 누나가 왼손잡이여서, 오른손 하이파이브르 잘하던 똑똑이. 성격도 좋아 하루만에 적응을 마쳤다. 강아지답게 에너지도 씩씩하게 넘쳤다.
솔잎이 두 번째 누나도 눈물자국을 더 없애기 위해 애썼다. 여러 샘플 사료를 먹여가며 솔잎이에게 맞는 걸 찾았다. 나중에 만날 가족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매일을 꼼꼼히 기록했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솔잎이 옷도 도톰하게 바뀌었다. 터그 놀이를 즐겼고 산책 나가면 바스락대며 낙엽에 뒹굴기도 했다. 발라당 누워서 잠을 잤다. 형이 요리하면 밑에서 뭐 하나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렸다.

추운 겨울로 접어들었다. 솔잎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하얀 눈을 봤다. 동그란 발자국을 네 개씩 내며 곁에서 걸었다. 신나게 뛰어놀고, 피곤해서 뻗고, 그러는 새에도 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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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보호를 하며 입양 홍보 글도 부단히 올렸다. 소소한 일상 사진과 함께, 입꼬리 등 매력 포인트와 함께, 솔잎이 가족을 찾아주려 애썼다. 올린 사진이 150개나 되었다. 좋은 가족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그리 컸다.

해가 새로 바뀌었다.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가족을 찾지 못했다. 임보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솔잎이가 태어났고 버려졌던 계절, 봄이 되었다. 봄은 봄이되 같은 봄은 아녔다. 곁에 사랑하고 돌봐주는 이가 있는 새로운 봄이었다.
그 무렵, 민서씨는 우연히 솔잎이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단다. 그는 딩크를 결심한 신혼이었다.

"친구가 사진을 보내줬는데, 제가 키우던 반려견 대추랑 닮아서 반했어요. 코가 길고 귀가 쫑긋하고 다리가 짧고…제 이상형이었지요."
오래 입양이 안 됐다는 말. 처음엔 유기견이란 걸 알고 안타깝고 불쌍한 맘도 들었단다. 가족으로 맞고 싶었다. 민서씨 남편은 집이 오피스텔이라 작다며 입양을 반대했다. 일주일을 싸운 끝에 남편이 져줬다.

한 살을 채워가던 지난해 3월 26일. 솔잎이는 드디어 가족이 생기게 됐다. 그의 두 번째 누나는 수제 간식 케이크에 촛불 하나를 꽂고, 솔잎이 살게될 삶을 축하해주었다. 입양되며 이름도 솔잎이에서, '대길이'로 바뀌었다. 대길이를 데려오던 시점에 KBS 드라마 '추노'를 정주행하다 지었다고. 원래 있던 반려견 대추와 '대자 돌림'을 맞추는 것이기도 했다.

'유기견을 입양한 훌륭한 나.' 민서씨는 솔직히 그런 타이틀을 꿈꾼 바도 없잖았으나…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밤새 짖고, 외출하면 하울링하고, 리드줄을 물고 길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바닥 쓰레기를 입에 넣고, 간식을 주면 손도 함께 깨물고,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고. 평화롭지 않은 한 달이 이어졌다.
"잠도 잘 못 자고 예민해져 있었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지 꼭 해보자, 맘 먹고 이 악물고 훈련했어요."

민서씨는 대길이가 어떤 강아지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강아지였다. 그래서 집안 산책부터 조금씩 훈련했다. 남편과 2인 1조로 외부 소음 둔감화, 하우스, 하네스, 배변, 분리불안 완화 등 많은 훈련을 했다. 간식과 산책이 필수였다. 함께 훈련하는 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그 결과 대길이는 어떻게 됐을까. 물지도 않고 짖지도 않고 하우스도 잘 들어가고 산책도 잘하는, 착한 강아지가 됐단다. '내가 바뀌면 대길이도 바뀌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입양을 반대하던 민서씨 남편도 '대길이 바보'가 됐다. 퇴근했을 때 대길이가 반갑다고 마중 나가면, 너무 귀엽고 행복하단다.

유기견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안타깝고 불쌍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하나도 안 불쌍해요. 그저 자랑이에요. 너무 귀엽거든요. 엘리베이터에서도 길에서도, 처음 보는 대길이를 예뻐해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대길이도 꼬리 흔들고 좋아하고요."

에필로그(epilogue).
대길이의 '분리 불안'을 나아지게 해주려 훈련할 때였다. 외출 후 대길이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홈 CCTV를 켜놓고 나갔었다.

훈련이 통했는지, 요즘엔 대길이가 울지 않는다고. 원래는 하울링하고 돌아오라 하는데, 조금 기다리다 괜찮아진단다.
민서씨는 남편과 그런 대화를 했다.

"이상하네. 얘가 왜 안 울지?"(민서씨)
"왜? 대길이가 막상 안 우니까 서운해?"(남편)

그때 알았단다. 대길이만 분리불안이 있는줄 알았는데, 민서씨도 분리불안이 있었단 걸.
그리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이 된 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