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이지? 오렌지 사 갈게" 112에 걸려온 전화…'마약범' 잡았다

"수원역이지? 오렌지 사 갈게" 112에 걸려온 전화…'마약범' 잡았다

김지성 기자
2024.01.08 06:00

[베테랑]이준영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스1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스1

"어~ 나야. 너희 회사 수원역 앞이지? 거기로 갈게."

지난달 21일 저녁 7시8분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이준영 경사(37)는 엉뚱한 내용에 대뜸 반말로 걸려온 신고에 112상황실로 종종 걸려오는 항의성 전화인 줄 알았다. 일반적인 112신고는 신고자의 요청사항 설명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고자인 택시기사 A씨가 마약을 뜻하는 '드럭'(Drug), '손님 태우고 있다' 등의 얘기를 하면서 이 경사는 심상찮은 상황임을 감지했다. 이 경사가 "위급한 상황이냐, '응' '아니'로 답해달라"고 하자 A씨는 "응 뭐 그렇지"라고 답했다. 마약 신고라는 것을 눈치챈 이 경사는 곧장 112신고 중 최고 단계인 '코드 제로(0)'를 발령했다.

이 경사는 범인 검거에 필요한 질문을 일상적인 대화에 숨겨 건넸다. 가령 택시 색깔이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황색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황색이면 '오렌지 하나 사 갈게'라고 해달라"고 말했다. 범인의 인상착의를 날씨에 빗대 물어 외투 색이 밝은지 어두운지도 알아냈다.

이 경사는 무엇보다 신고자 A씨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마약범은 강력범 중에서도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행여 A씨가 범인을 잡겠다는 정의감에 무리했다가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어서다. 이 경사는 A씨에게 "상대가 내려달라고 하면 절대 대응하지 말고 바로 내려달라"고 재차 안내했다.

겉보기에 친구와 대화하는 내용으로 통화는 그렇게 12분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A씨가 운전한 택시가 수원 매산지구대 앞에 정차했고 현장에 대기하던 경찰이 승객이었던 중국 국적의 30대 남성 B씨를 곧바로 체포했다. B씨는 체포 당시 필로폰 0.6g을 소지하고 있었다. B씨는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으로 마약을 샀다고 시인했다.

이 경사는 "마약 범죄의 경우 항간에 근거 없이 떠도는 내용을 제보한다는 신고가 종종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급박한 사건은 이례적"이라며 "택시 기사가 뉴스 보도를 통해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눈치챈 것도, 위급한 상황에 신고한 것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던지기' 수법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비대면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택시 기사 A씨는 B씨가 경기 수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시흥시 한 다세대 주택으로 가 우편함에서 물건을 뺀 뒤 다시 수원역으로 가달라고 한 것을 수상히 여겨 신고했다고 한다.

택시기사의 이런 기지에 이 경사의 위기 대처 능력이 더해지면서 마약사범을 검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 경사는 2014년 8월 입직해 올해로 11년차의 베테랑 경찰이다. 지난해 4월 112상황실로 오기 전까지 지역 경찰, 형사과, 여성청소년과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다.

이 경사는 "현장에서 사건 초기부터 송치까지 해 본 경험이 112상황실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며 "상황실은 사건의 첫 단추를 끼우는 곳이고 하루에 처리하는 사건 수만 200건에 달할 정도로 절대량이 많다"고 말했다.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상 경찰은 2인 1조로 현장에 출동해 동료 경찰과 협업할 수 있지만 112상황실은 업무 특성상 신고자의 전화를 받는 경찰관 홀로 초기 대응을 해야 한다.

이 경사는 "1대 1로 전화를 하니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안내를 제대로 못 하면 큰일이 날 수 있다"며 "신고자의 목소리에 의존해 사건을 파악해야 하는데 신고자가 급박한 상황에 놓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감정이 앞서게 되면 문제를 풀기가 훨씬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적절한 대응을 위해 112상황실 대응 매뉴얼에 더해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하는 것이 이 경사만의 비결이다. 이 경사는 "경찰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피해자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역할을 확실하게 하는 게 목표"라며 "경찰은 늘 시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언제는 필요한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말했다.

이준영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 경사 /사진=본인 제공
이준영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 경사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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