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안 갈 거야?" 위험 신호도 막아선 말…아이들은 무너졌다

"좋은 대학 안 갈 거야?" 위험 신호도 막아선 말…아이들은 무너졌다

최문혁 기자, 김서현 기자, 민수정 기자
2026.06.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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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클린 스쿨-자살 없는 학교①(종합)

[편집자주] 머니투데이는 올해 마약, 도박, 자살 등이 없는 맑은 학교 만들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전세계적으로 높습니다. 청소년 자살 사망률도 최근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우울 증상을 호소해도 '사춘기'로 치부되면서 말할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위기에서 구할 방법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정신과 기록 있으면 좋은 대학 못 가"...'벼랑 끝' 몰린 아이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춘기라서 그래." "정신과 기록이 있으면 좋은 대학 못 가."

청소년 시절 극심한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던 A씨(30·여)가 당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들었던 대답들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를 가졌던 A씨는 과거 여러 차례 극단적 시도를 했다.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A씨는 "그때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을 지조차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A씨의 우울 증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말다툼 이후 따돌림을 당하면서 학교에서는 점점 '투명인간'이 됐다. 물리적 폭력이 없는 따돌림은 어른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A씨는 "담임 선생님도 굳이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며 "점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됐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후 받은 심리검사에서는 심각한 우울 증세가 확인됐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치료 권유가 아니었다. A씨는 "교무실에 불려가 '어떻게 좋은 대학에 가려고 그러느냐', '이런 건 솔직하게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관심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멀어졌고 따돌림은 계속됐다.

어른들의 방치 속에 상황은 악화됐다. 치료받지 못한 우울과 불안은 자해로 이어졌다. A씨는 왼쪽 손목의 작은 타투를 가리키며 "자해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학생 때는 들키지 않기 위해 두꺼운 머리끈을 손목에 차고 다녔다고 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참지 못하고 학교 화장실에서 자해를 하는 바람에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업에도 문제가 생겼다. 우울과 불안이 계속되면서 난독 증세까지 나타났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담임 선생님에게 증세를 털어놨지만 "왜 이렇게 예민하느냐"는 답만 돌아왔다.

청소년 자살 사망자별 동기/그래픽=김지영
청소년 자살 사망자별 동기/그래픽=김지영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우울증의 심각성을 인지한 A씨는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부모님은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외면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입시와 취업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A씨는 "정신과 병력이 대입과 취업에 문제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과 학교가 외면했지만 A씨는 '살기 위해' 고등학생 시절 혼자 병원을 찾았다. 용돈을 모아 진료비를 마련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틈타 몰래 병원을 다녔다. 하지만 지속적인 치료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A씨는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야 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 2~3번 갔던 것이 전부"라며 "정신질환 특성상 단발적인 치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우울과 불안은 성인 때까지 이어졌다. 자해는 극단적 시도로 나아갔다. A씨는 20대 초반 두 차례 극단적 시도를 했다. A씨는 "어른들이 왜 취업을 걱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데 취업이 무슨 걱정인가"라고 고백했다.

◆ "또 사고 쳤니"…청소년 우울증, 치료 골든타임 놓친다

청소년 정신과 진료 현황/그래픽=김지영
청소년 정신과 진료 현황/그래픽=김지영

청소년기 우울 증세가 극단적 시도로 이어지는 건 A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만난 20대 여성 B씨 역시 학창시절 괴롭힘과 고립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정과 학교에 반복적인 위기 신호를 보냈지만, 적절한 치료와 상담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고립은 B씨를 한강 다리 위로 내몰았다.

B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친구 관계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경험했다. B씨는 "자존감은 급격히 낮아졌고 '나는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며 "성적은 떨어졌고 SNS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B씨는 고등학교 자퇴 전까지 2년 동안 여섯 차례 한강 다리 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일부 어른들은 이를 위기 신호가 아닌 '문제 행동'으로 치부했다. 당시 B씨가 극단적 시도 다음 날 담임 선생님에게 들을 말은 '너 또 사고 쳤냐'였다. 심리검사에서 극심한 우울증 증세가 나오면서 B씨는 뒤늦게 병원 치료를 시작했고 학교를 그만뒀다.

A씨와 B씨의 경험은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다. 성적 하락과 고립, 반복되는 결석, 정신건강 상담 요구, SNS를 통한 위험 신호 표출.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위기 신호는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는 이를 질병이나 구조 요청이 아닌 사춘기의 문제 행동이나 개인 성격 문제로 넘겼다.

그 결과 청소년 시절의 정신건강 문제는 성인 때까지 이어졌다. A씨는 "인생의 절반을 우울증과 함께 보냈다"며 "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가도 치료를 멈추면 다시 증세가 심해진다"고 말했다.

A씨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과 부모들에게 "청소년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며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듯이 정신질환도 치료 골든타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힘들어요" 아이들이 외친 위험 신호…왜 혼자 버텨야 했나

지난해 9월25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안전펜스에 SOS생명의전화가 설치되어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9월25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안전펜스에 SOS생명의전화가 설치되어 있다./사진=뉴시스.

극단적 시도를 한 청소년 상당수가 반복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고도 낙인 우려나 무관심 등으로 제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의 핵심은 위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10일 대한의학회지(JKMS)에 따르면 2015~2022년 8년 동안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해 환자 4452명 가운데 24세 이하 청소년·청년은 1445명(32.5%)이다.

김태한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등 공동 연구팀이 이들을 추적 관찰한 결과, 청소년·청년층의 2개월 내 응급실 재방문율은 7.1%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5~40세 성인의 재방문율(5.8%)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 차례 위기를 겪은 이후에도 다시 자해·자살 시도가 반복될 만큼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청소년기 자살 시도 등 위험 신호가 치료나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극단적 시도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의 상당수는 생전 위험 신호를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현주 한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이 2015~2021년 자살로 숨진 초·중·고교생 36명을 심리부검 형식으로 조사한 결과 29명(81%)이 사망 전 언어적·행동적·정서적 신호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심리부검은 유족 면담과 유서 검토 등으로 사망 원인을 추적하는 조사 방법을 뜻한다.

조사 결과 언어적 신호(69.4%)를 보낸 경우가 가장 많았고 행동적 신호와 정서적 신호가 뒤를 이었다. 예컨대 '정말 죽고 싶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등과 같은 말을 하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변화 등이 이에 포함된다.

조사 대상 36명 가운데 35명은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은 경우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청소년들의 치료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소아·청소년 100명 중 실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이 6% 수준에 그쳤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15~2022년 서울 A 병원 응급실에 '자살시도 및 자해'로 방문한 환자, A 병원 자살시도 환자 중 나이대별 60일 내 응급실 재방문율/그래픽=윤선정
2015~2022년 서울 A 병원 응급실에 '자살시도 및 자해'로 방문한 환자, A 병원 자살시도 환자 중 나이대별 60일 내 응급실 재방문율/그래픽=윤선정

본지가 만난 청소년 시절 극단적 시도 경험자들의 증언도 비슷했다. 교사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거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결국 혼자 문제를 감당하려 했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경험이 자살 예방에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했다. 청소년기 자해 경험이 있다고 밝힌 20대 A씨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센터에서 선생님이 저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고 진심을 느끼게 됐다"며 "'죽고 싶다'는 말에 곧바로 달려와준 친구 때문에 자살 시도를 멈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해 위험 징후 조기 발견과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최근 청소년들은 게임 등 디지털 공간에서 자살 징후를 더 많이 표현하고 있다"며 "자살을 의미하는 암호를 쓰는 등 활발하게 SNS를 사용하기 때문에 디지털 자살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에 방어적 태도로 응답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교육계에서 낙인 해소를 위한 고민을 지속하고 마음 건강을 챙기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지속해서 홍보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안실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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